매일성경 | 신명기 9장 1-12절 | 자기 의의 위험에 빠지지 않으려면

2024. 1. 20. 07:44성서유니온 매일성경/신명기

목차


    신명기 9:1-12

    찬송가 348장 마귀들과 싸울지라


    하나님을 잊어버릴 위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면 우상을 숭배하게 되고 우상을 숭배하게 되면 멸망을 당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릴 위험 중 하나는 물질적 번영의 위험입니다. 풍족하게 될 때 하나님을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8:14). 9장에서도 하나님을 잊어버릴 수 있는 위험이 이어집니다. 9장에 나오는 위험은 "자기 의"의 위험입니다. 

    아낙 자손

    1. 이스라엘아 들으라 네가 오늘 요단을 건너 너보다 강대한 나라들로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니 그 성읍들은 크고 성벽은 하늘에 닿았으며

    2. 크고 많은 백성은 네가 아는 아낙 자손이라 그에 대한 말을 네가 들었나니 이르기를 누가 아낙 자손을 능히 당하리요 하거니와

    3. 오늘 너는 알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맹렬한 불과 같이 네 앞에 나아가신즉 여호와께서 그들을 멸하사 네 앞에 엎드러지게 하시리니 여호와께서 네게 말씀하신 것 같이 너는 그들을 쫓아내며 속히 멸할 것이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가서 점령해야 하는 땅은 그들보다 강대한 민족들이 거주하는 땅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민족보다 몸집이 크고 숫자도 많았습니다. 특별히 그들은 아낙 자손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아낙 자손에 대한 속담 같은 말이 전해지고 있었습니다. 그 말은 "누가 아낙 자손을 능히 당하리요"라는 말입니다(2절). 그만큼 아낙 자손은 크고 강했습니다. 

    맹렬한 불과 같이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때 맹렬한 불을 보았습니다(3절). 맹렬한 불과 함께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죽음의 공포를 느꼈습니다. 이제 그 맹렬한 불이 아낙 자손을 향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앞에 있는 적들은 불 앞에 놓인 지푸라기 같은 처지입니다. 곧 멸망하고 엎드러질 것입니다. 

    자기가 의롭다고 생각하는 함정

    4.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신 후에 네가 심중에 이르기를 내 공의로움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나를 이 땅으로 인도하여 들여서 그것을 차지하게 하셨다 하지 말라 이 민족들이 악함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니라

     

    자기들보다 크고 강하고 수가 많은 아낙 자손들이 엎드러지는 것을 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도덕적 우월감에 빠질 수 있습니다. 자기들이 도덕적으로 의롭기 때문에 승리했다는 생각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그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하나님 앞에 의로운 사람은 없습니다. 아낙 자손들이 엎드러지는 것은 그들이 악하기 때문이지 이스라엘이 의롭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것은 사람이 자주 빠지는 함정입니다. 원수들이 괴로움을 당할 때 그들보다 자기가 의롭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그렇지 않다고 마음을 고쳐 먹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상응하는 보응을 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괜찮은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긍휼히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의로워서 괜찮은 것이 아닙니다. 

    심판과 약속

    5. 네가 가서 그 땅을 차지함은 네 공의로 말미암음도 아니며 네 마음이 정직함으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이 민족들이 악함으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하신 맹세를 이루려 하심이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는 것은 첫째 그 땅에 거주했던 원주민들이 심히 악했기 때문에 그들을 심판하시기 위함이고 둘째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맹세를 이루시는 것입니다. 절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공의로워서도 아니고 그들이 정직해서도 아닙니다. 역사상 거의 모든 나라가 전쟁을 벌여서 다른 나라를 정복할 때 도덕적 우월성을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침략을 하면서 도덕적 우월성을 주장하는 것은 성경적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런 행위를 싫어하십니다. 

    햐나님의 약속 덕분임

    모세는 특별히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맹세를 언급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기 3장 6-8절에서 모세에게 스스로를 소개하시기를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해 들이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 덕분입니다. 이 약속은 살아 있는 약속입니다(막 12:26).

    매일성경 | 신명기 9장 1-12절 | 자기 의의 위험에 빠지지 않으려면

    살아 있는 약속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고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십니다(마 22:32).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하나님 안에서 살아 있습니다. 이 말은 우리 생명도 하나님 안에서 영속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기업을 물려 받을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하나님 안에서 살아 있고 그들에게 하신 약속도 아직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우리가 의롭다함을 얻고 영생의 복을 받은 것은 우리가 의롭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 덕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덕분입니다. 우리 공로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편에서 아무 지불한 것 없이 생명을 얻어 살고 있고 또한 아무 지불한 것 없이 영생을 얻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값을 치르셨습니다.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기억하라

    6. 그러므로 네가 알 것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이 아름다운 땅을 기업으로 주신 것이 네 공의로 말미암음이 아니니라 너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라

    7. 너는 광야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격노하게 하던 일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오던 부터 이 곳에 이르기까지 늘 여호와를 거역하였으되

     

    자기 의에 빠지지 않으려면 기억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억해야 할 것은 광야에서 하나님을 격노하게 하던 일입니다. 늘 하나님을 거역했던 일입니다. 그들이 살아남은 것은 기적입니다. 

    과거에 범한 죄를 기억함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지금 살아있는 것이 기적입니다. 그렇게 사사건건 하나님을 거역하고 죄를 저질러 놓고도 지금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인 것입니다. 과거에 범한 여러 가지 죄를 기억하는 것은 경건에 도움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모든 죄를 사해 주셨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목이 곧은 백성

    목이 곧다는 것은 목이 뻣뻣해서 이끄는 대로 잘 이끌려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마치 어린 송아지가 버티면서 주인이 이끄는 대로 가지 않으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목이 뻣뻣한 것은 이렇게 송아지를 연상하는데 이것은 그들이 금송아지를 만든 사건과 이어집니다. 우상을 만들고 섬기면 우상처럼 되기 때문입니다(12절). 

    호렙 산에서 있었던 사건

    8. 호렙 산에서 너희가 여호와를 격노하게 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너희를 멸하려 하셨느니라

    9. 그 때에 내가 돌판들 곧 여호와께서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돌판들을 받으려고 산에 올라가서 사십 주 사십 야를 산에 머물며 떡도 먹지 아니하고 도 마시지 아니하였더니

    10. 여호와께서 두 돌판을 내게 주셨나니 그 돌판의 글은 하나님이 손으로 기록하신 것이요 너희의 총회 에 여호와께서 산상 불 가운데서 너희에게 이르신 모든 말씀이니라

    11. 사십 주 사십 야를 지난 후에 여호와께서 내게 돌판 곧 언약의 두 돌판을 주시고

    12. 내게 이르시되 일어나 여기서 속히 내려가라 네가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스스로 부패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도를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부어 만들었느니라

    멸망 당했어야 하는 자들

    모세는 호렙 산에서 있었던 사건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상기시킵니다. 바로 그들이 멸망 당할 뻔한 사건입니다(8절). 8절의 "멸하려(שָׁמַד)"는 7장 23절에 나오는 단어와 같은 단어입니다. 7장 23절에는 하나님께서 가나안 족속들을 멸하시리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가나안 족속이 멸망 당하는 이유는 그들이 우상을 숭배했기 때문입니다(7:25). 따라서 사실 오래 전에 멸망 당했어야 하는 자들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멸망 당하지 않고 약속의 땅 앞에 서 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알아야 합니다. 

    언약식을 거행하는 중에 반역함

    이스라엘 백성들은 절대 자기가 의롭다고 주장할 수 없습니다. 생각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언약을 맺는 그 순간에 우상을 숭배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9-12절). 모세는 하나님께 언약의 두 돌판을 받으려고 산에 올라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손으로 돌판에 언약의 말씀을 기록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시내산 불 가운데에서 큰 음성으로 들려주신 말씀입니다. 말씀을 들려주시고 이제 그 말씀을 두 돌판에 새겨서 언약을 맺으시는 과정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패한 것입니다(12절). 죽음의 공포를 느낄 정도로 두려워 떨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겠다고 하고서는 금방 부패해서 방금 하늘에서 들린 하나님의 음성을 어기고 우상을 부어 만들었습니다. 그 정도로 답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어찌 자기 의를 주장할 수 있을까요? 

    자기 의의 위험에 빠지지 않으려면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 최고의 것을 드리는 순간 우리 마음에는 하나님께 반역하는 마음이 고개를 듭니다. 설교를 할 때 성도들이 은혜 받는 것을 보면 그 모든 영광을 나에게 돌리고 싶어집니다.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에 가장 추악한 것을 마음에 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살아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덕분입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중보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멸망하지 않은 것처럼 하나님 우편에 계시는 우리 주님께서 속죄의 효력을 우리 하나님께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덕분에 우리 생명이 유지되고 있고 또 그 덕분에 영생을 얻었음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이 자기 의의 위험에 빠지지 않는 비결입니다.

     

    글이 유익하셨다면 구독과 공감(❤️)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