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아모스 2장 4-16절 | 하나님 백성의 죄,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지 않음

2024. 12. 5. 18:05성서유니온 매일성경/아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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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 2:4-16

찬송가 28장 복의 근원 강림하사


공의

아모스는 하나님의 공의를 강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민족을 심판하십니다. 그 안에 유다와 이스라엘이 들어있습니다. 앞에서 이방에 대한 심판을 말씀한 아모스는 유다와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을 선포합니다. 4-5절은 유다에 대한 심판을 6절 이하에서는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입니다.

유다의 죄

4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유다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여호와의 율법을 멸시하며 그 율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그의 조상들이 따라가던 거짓 것에 미혹되었음이라
5   내가 유다에 불을 보내리니 예루살렘의 궁궐들을 사르리라

 

유다도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유다가 받을 심판은 이방이 받을 심판과 결이 다릅니다. 유다가 받을 심판은 율법이 그 기준입니다. 이방이 받을 심판에서 그 기준은 그들의 양심이었습니다. 하지만 유다가 심판 받을 기준은 율법입니다. 유다는 여호와의 율법을 멸시했습니다. 그 율례를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의 조상들이 따라가던 거짓 것에 미혹되었습니다(4절). 

 

이 거짓 것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아모스서 주석, 181쪽). 

여기 이른 바 "거짓 것"은 이방의 다른 신 혹은 우상을 가리킨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런 것들의 미혹을 받은 일이 종종 있었던 원인은, 1) 그 때에 그들이 하나님의 계시 지식을 받은 정도가 아직 어린데 있었고, 2) 인간성(人間性)은, 언제나 마찬가지로 악하여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하나님처럼 혹은 그 이상으로 사랑하는 습성(習性)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기독신자들도 오늘날(신약시대) 방식으로 쉽사리 우상 숭배에 떨어지나니 그것은, 그들이 무엇을 하나님 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사랑하는 마음과 행위이다. 

 

4절에는 우상 숭배의 특징이 여러 가지가 나옵니다. 먼저 우상 숭배는 여호와의 율법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율법을 멸시한다는 것은 율법을 주신 여호와를 멸시함을 포함합니다. 여호와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율법에 담긴 사랑을 무시하고 그 결과 율법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율법을 멸시하면 그것을 지키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음에 나오는 것이 "그 율례를 지키지 아니하고"입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 말고 다른 것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사람은 항상 어떤 것을 추구하면서 따라가는 존재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추구하고 따라가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따라가지 않으니까 다른 것을 따라갑니다. 따라가는데 "그의 조상들이 따라가던" 것을 따라갑니다. 이것은 어떤 전통을 따라갔다는 것입니다. 조상들이 여러 가지 우상들을 섬긴 것을 그대로 보고 배워서 그 우상들을 섬겼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상 숭배는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습니다.

 

네 번째는 거짓 것에 미혹되는 것입니다. 우상 숭배는 거짓 것입니다. 신이 아니기 때문에 거짓 것입니다. 속이는 것입니다. 신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거짓 것입니다. 거짓 것을 참된 것이라고 믿는 것이 미혹입니다. 그러므로 우상 숭배는 미혹되어 범하는 죄입니다. 온전한 영으로 범하는 것이 아니고 미혹된 영으로 범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을 심판하셨던 대로 똑같이 불을 보내신다고 하십니다(5절). 유다도 마찬가지로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죄

6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스라엘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가난한 자를 팔며
7   힘 없는 자의 머리를 티끌 먼지 속에 발로 밟고 연약한 자의 길을 굽게 하며 아버지와 아들이 한 젊은 여인에게 다녀서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며
8   모든 제단 옆에서 전당 잡은 옷 위에 누우며 그들의 신전에서 벌금으로 얻은 포도주를 마심이니라

 

아모스는 유다의 죄를 지적한 후에 이어서 이스라엘의 죄를 지적합니다. 이스라엘의 죄를 요약하자면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죄입니다. 앞에서 유다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은 죄를 범했습니다. 그 결과는 이웃 사랑을 사랑하지 않는 것인데 그런 죄가 이스라엘에 심각했습니다. 

 

먼저 이스라엘 사람들은 은을 받고 의인을 팔고 신 한 켤레를 받고 가난한 자를 팔았습니다. 은을 받고 의인을 팔았다는 것은 뇌물을 받고 의인을 정죄했다는 뜻입니다. 신 한 켤레를 받고 가난한 자를 팔았다는 것은 가난한 자가 채무를 의행하지 못하므로 그를 채권자에게 헐값에 넘겨주었다는 뜻입니다. 이런 죄는 사람보다 돈을 더 가치있게 여기는 풍조가 그 사회에 만연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입니다(6절).

 

사람을 얼마나 멸시했는제 힘 없는 자의 머리를 티끌 먼지 속에 발로 밟았다고 합니다(7절). 돈이나 힘이 있는 사람이 힘 없는 자를 사람 이하로 대접했다는 것입니다. 연약한 자의 길을 굽게 했다는 것은 약한 자의 길을 막고 여러 가지 장애물을 놓아서 살기 참 힘들게 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또한 아버지와 아들이 한 젊은 여자에게 다녔다고 합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한 여자와 간음을 행했다는 것인데 이것도 쾌락 사랑하기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행태가 이렇게 나타난 것입니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는 아주 가증한 죄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욕되게 한 것입니다. 

 

당시에는 예배도 부패했는데 모든 제단 옆에서 전당 잡은 옷 위에 누웠다고 합니다(8절). 전당 잡은 옷 위에 누웠다는 것은 그것을 깔고 잠을 잤다는 것인데 이것은 율법에서 금지하는 것입니다. 율법에 전당 잡은 옷은 밤이 오기 전에 돌려주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출 22:25; 신 24:13). 전당 잡은 옷을 돌려주는 것은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도 밤에는 따뜻하게 자도록 하는 하나님의 긍휼이 그 안에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은 무시하면서 제단 옆에 있다고 합니다. 즉, 예배를 드리는 자리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종교적인 모양은 있으나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은 전혀 없었다는 뜻입니다. 

 

또한 그들의 신전에서 벌금으로 얻은 포도주를 마신다고 합니다(8절 하). 여기 신전이라는 말은 "그들의 신들의 집"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자기를 위해서 여러 신을 섬기면서 그 신전에 드러갈 때 벌금으로 얻은 포도주를 마셨다는 말입니다. 벌금으로 얻은 포도주는 직역하면 "약하게 한(אָנַשׁ) 포도주"라는 뜻입니다. 즉 가난한 자를 더욱 약하게 만든 포도주라는 뜻으로 가난한 자를 착취한 대가로 얻은 포도주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에서 당시 이스라엘의 사회상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착취가 만연한 사회였습니다. 부한 자는 더욱 부해지고 가난한 자들은 더욱 가난해지는 사회였습니다. 물론 어느 사회나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는 더욱 가난하게 되는 일이 발생합니다. 문제는 부자가 부해질 때 가난한 자들에게 손을 펴는가하는 것입니다. 손을 펴서 가난한 자들을 돕는 사회는 착취하는 사회는 아닙니다. 그러나 부자가 부해지는 데도 가난한 자들을 더 강하게 착취하고 누르는 사회가 있습니다. 그런 사회가 바로 착취가 만연한 사회입니다. 그런 사회에서는 자기가 착취를 범하고 있다는 사실도 모릅니다. 그저 자기는 의롭다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의롭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당당하게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런 일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의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보고도

9   내가 아모리 사람을 그들 앞에서 멸하였나니 그 키는 백향목 높이와 같고 강하기는 상수리나무 같으나 내가 그 위의 열매와 그 아래의 뿌리를 진멸하였느니라
10   내가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이끌어 내어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인도하고 아모리 사람의 땅을 너희가 차지하게 하였고
11   또 너희 아들 중에서 선지자를, 너희 청년 중에서 나실인을 일으켰나니 이스라엘 자손들아 과연 그렇지 아니하냐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2   그러나 너희가 나실 사람으로 포도주를 마시게 하며 또 선지자에게 명령하여 예언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나님을 모르는 나라라도 착취하는 것은 아주 악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압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서 벌어지는 착취는 더더욱 악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가나안 땅에 정착시키실 때 강한 자들을 몰아내시고 정착시키셨기 때문입니다. 가나안의 원 주민인 아모리 사람들은 키가 백향목 같이 크고 상수리나무 같이 강했습니다. 그런 강한 자들을 하나님께서 진멸하셨습니다. 그 위의 열매와 그 아래의 뿌리를 진멸하셨다고 하는데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그 사회 전체를 다 진멸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아모리 사람의 사회가 바로 착취가 만연한 사회였습니다. 힘의 논리로 돌아가는 사회였습니다. 강포와 포학이 가득한 사회였습니다. 그런 사회를 멸하시고 거기에다가 이스라엘 사회를 심으신 것입니다(10절). 그런데 이스라엘이 그들과 똑같은 짓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셔서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인도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서 광야를 무사히 건너왔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어서 광야를 건너온 것입니다. 광야로 건너와서 정착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아모리 사람들의 압제에서 그들을 건지시고자 선지자를 일으키시고 나실인을 일으키셨습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들을 구원했습니다. 그런 사람으로는 사무엘이 있습니다. 나실인은 하나님께 헌신한 사람인데 그도 하나님께 붙들려서 이스라엘을 구원했습니다. 그런 사람으로 삼손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하나님께서 압제 당하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너희가 너희 형제를 압제하는 것이 가당하냐 하는 말씀입니다. 그런 뜻으로 하나님께서는 "과연 그렇지 아니하냐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11절). 

 

하나님께서 그렇게 구원하셨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나실 사람으로 포도주를 마시게 하고 선지자에게는 예언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헌신하는 사람의 헌신을 가벼이 여기고 그 헌신을 가로 막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의 입을 막은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구원이 막혀 버립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막히는 이유는 사람들이 하나님과 연결되기를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압제를 당할 것임

13   보라 곡식 단을 가득히 실은 수레가 흙을 누름 같이 내가 너희를 누르리니
14   빨리 달음박질하는 자도 도망할 수 없으며 강한 자도 자기 힘을 낼 수 없으며 용사도 자기 목숨을 구할 수 없으며
15   활을 가진 자도 설 수 없으며 발이 빠른 자도 피할 수 없으며 말 타는 자도 자기 목숨을 구할 수 없고
16   용사 가운데 그 마음이 굳센 자도 그 날에는 벌거벗고 도망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3절은 "보라"로 시작합니다. "보라"는 주의를 환기시키는 말입니다. 그 다음 나오는 말은 "내가(אָנֹכִ֥י)"입니다. 하나님과의 연결을 싫어하는 그들에게 "내가" 즉 하나님께서 심판자로 임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수레가 흙을 누름 같이 누르시겠다고 하십니다. "내가" 누르시겠다고 하심으로 너희가 약한 자를 압제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인지를 알게 하시겠다는 뜻이 거기에 담겨있습니다. 

보라 곡식 단을 가득히 실은 수레가 흙을 누름 같이 내가 너희를 누르리니
"보라 곡식 단을 가득히 실은 수레가 흙을 누름 같이 내가 너희를 누르리니"

 

하나님께서 그렇게 누르실 때에 그 심판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14-16절). 혹시 도망가는 자가 있다면 용사가 도망할 수 있을텐데 그도 벌버벗고 도망할 수 있을 정도로 아무도 도망할 수 없다고 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압제 가운데 두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앗수르의 침략으로 성취되었습니다. 

 

힘이 있다고 남을 억울하게 하면 언젠가는 그 억울함과 압제를 내가 당하는 줄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힘이 세어도 그 압제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 압제를 벗어나려면 벌거벗고 도망해야 합니다. 즉 아무 힘이 없는 상태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입니다. 힘이 있을 때 항상 주의해야 하는 것은 내가 이 힘으로 혹시 누구를 억울하게 하지는 않았는가, 그 억울함을 당한 사람이 하나님께 혹시 호소하지는 않는가 돌아보는 것입니다. 항상 깨어서 그런 눈이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없는 사람은 언제든지 다른 사람을 억울하게 할 것이고 그 똑같은 일을 자기가 당할 것입니다. 자기가 당하지 않는다면 그 자손이 그 일을 당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정확하십니다.

 

문제는 구원을 받은 사람이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은 사람은 그렇게 하면 더더욱 안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압제에서 구원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죄와 사망의 압제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흉악의 줄을 풀어주는 사람이 되어야지 강포와 포악의 줄로 사람을 매는 사람이 되면 안 됩니다.

 

이 모든 죄의 원인은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니 그 율법을 멸시합니다. 그 율법을 멸시하니까 이웃을 사랑하지 않고 압제합니다. 이웃의 눈에서 눈물이 나게 하고 그 마음을 힘들게 하고 억울하게 합니다. 나 때문에 이웃이 힘들어한다면 그 근본을 잘 따져보아야 합니다. 그 근본은 바로 하나님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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