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열왕기상 18장 16-29절 |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을 갈멜산으로 불러 모은 엘리야

2023. 10. 19. 07:06성서유니온 매일성경/열왕기상

목차


    열왕기상 18:16-29

    찬송가 355장 다 같이 일어나


    아합을 만나는 엘리야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18:1). 엘리야는 그 말씀대로 아합을 만나러 가다가 먼저 오바댜를 만났습니다. 오바댜는 아합의 왕궁을 맡은 사람으로서 여호와를 지극히 경외하는 사람이었습니다(18:3). 오바댜는 그 땅에 남은 자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엘리야를 만난 오바댜는 아합에게 말하고 아합과 엘리야가 만나게 됩니다(16절). 엘리야를 만난 아합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엘리야를 볼 때에 아합이 그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너냐(17절)" 이에 대해서 엘리야는 "그가 대답하되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버지의 집이 괴롭게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당신이 바알들을 따랐음이라(19절)"라고 대답합니다.

    누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했는가

    사실 엘리야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맞습니다. 왜냐하면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 사람은 바로 엘리야이기 때문입니다(약 5:17). 그런데 엘리야가 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나를 살펴보면 엘리야의 말이 맞습니다. 엘리야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 까닭은 바로 오므리와 아합 때문입니다. 오므리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 전의 모든 사람보다 더욱 악을 행하여(16:25)"라고 평가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아합은 더했습니다.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그의 이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여(16:30)" 오므리가 이전 악한 왕들보다 더 악했는데 아합이 오므리보다 더 악했습니다. 아합이 악했던 것은 그가 바알들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바알은 폭풍의 신으로 사람들은 바알이 비를 내려준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비를 내리기 위해서 바알에게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엘리야는 비가 오지 않기를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비가 오지 않아야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말 4:5-6). 

    백성들의 마음을 돌이키기 위한 제안, 그 제안을 따르는 아합

    엘리야는 아합에게 백성들의 마음을 돌이키기 위한 제안을 합니다. 그 제안은 누가 참 신인가를 백성 앞에서 가려보자는 제안이었습니다. 그는 바알의 선지자 사백오십 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 명을 갈멜 산으로 모아 자기에게로 나아오게 하라고 합니다(19절). 아합은 엘리야의 말대로 합니다. 아합은 엘리야를 죽이려고 나라 안팎을 샅샅이 뒤진 사람입니다(18:10). 게다가 왕궁을 맡은 성실한 오바댜도 단칼에 죽일 수 있을 정도로 포학한 사람입니다(18:9, 12). 그런 사람이 엘리야의 책망을 듣고 그의 제안을 따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합이 엘리야의 말대로 된 것을 3년 동안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아합은 엘리야의 말대로 비가 오지 않았기 때문에 엘리야의 말대로 해야 비가 오리라는 것을 직감했을 것입니다. 

     

    매일성경 | 열왕기상 18장 16-29절 |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을 갈멜산으로 불러 모은 엘리야

    여호와 하나님과 바알 사이에서 

    그렇게 해서 갈멜 산에 바알의 선지자 450명, 아세라의 선지자 400명과 엘리야 그리고 모든 백성들이 모였습니다.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21절)" 엘리야는 백성들에게 태도를 명확하게 하라고 촉구합니다. 당시 백성들은 바알도 따르고 하나님도 섬기는 애매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바알을 따르는 것은 사람의 악한 본성에 맞는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바알은 사람의 악한 본성대로 쾌락을 추구하면 아주 쉽게 부자가 되게 해 준다는 신이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악한 본성대로, 즉 자기 맘대로 사는데 풍요롭게 살 수 있다고 하니 혹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알에게 마음을 주었으면서도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은 대대로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자기들을 애굽에서 건지시고 가나안 족속들을 멸하시고 약속의 땅을 주신 권능의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하나님이신 것도 인정했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순종하기는 싫어했습니다. 이렇게 바알과 하나님 사이에서 머뭇머뭇하던 백성들에게 엘리야는 하나님만 따를 것을 촉구했습니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 백성들은 말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우상숭배로 흐려진 믿음, 이적을 자꾸 구하는 백성들 

    그러자 엘리야가 제안 한 가지를 합니다. 그것은 바알과 아세라를 위한 송아지를 한 마리 택하여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여호와 하나님을 위한 송아지도 그와 같이 해서 불로 응답하는 신이 참 하나님이라는 제안입니다(23-24절). 이에 대해서는 백성들이 다 대답힙니다. "이에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니라 백성이 다 대답하되 그 말이 옳도다 하니라(24절 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수많은 이적으로 자기들을 구원하신 역사를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믿음으로 앞으로 전진하며 믿음이 자라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러지를 못하고 믿음이 자꾸 흐려졌습니다. 어디까지 흐려졌냐면 하나님과 바알을 놓고 누가 참 하나님인가를 결정하라고 할 때 아무 말도 하지 못할 정도로 흐려졌습니다. 이것이 우상숭배의 폐해입니다. 그렇게 흐려진 믿음으로 엘리야가 이적을 베푸는 신이 참 신이라고 하자 아무 말도 못하던 백성들이 다 대답합니다. 이적을 자꾸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엄연히 살아계시다는 것이 3년 반 동안 비가 오지 않은 것으로 이미 증명이 되었습니다. 엘리야가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맹세한 대로 이미 이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것을 믿지 못하고 또 다른 이적을 구합니다. 예수님 때 종교지도자들도 그랬습니다. 

    아무 응답이 없는 바알, 헛된 우상

    바알 선지자들이 먼저 바알의 이름을 불렀습니다(25절). 그런데 아침부터 해가 중천에 떠오르기까지 불러도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응답하는 자도 없었습니다(26절). 엘리야는 담대하게 850명이나 되는 선지자들을 조롱했습니다(27절). 그 조롱을 듣고 선지자들은 칼과 창으로 그들의 몸을 상하게 하면서 뛰놀았지만(28절) 아무 소리도 없고 응답하는 자나 돌아보는 자가 없었습니다(29절). 이처럼 바알 숭배는 사제들의 몸을 쓰는 숭배였습니다. 뛰노는 숭배였습니다. 생각하고 깨달아 인격을 울리는 방식이 아니라 사람의 육체를 자극하는 방식의 숭배였습니다. 이러한 숭배는 자극적입니다. 뭔가 일어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러한 숭배에 응답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바알은 우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아무 응답이 없는 상황에서 85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자기 몸을 상하게 하고 뛰노는 일이 백성들의 눈에 어떻게 비쳐졌을까요? 신전에서 휘황찬란하게 꾸민 곳에서 각종 효과와 함께 그런 의식을 행했을 때는 뭔가 있어 보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오의 땡볕에서 하늘로부터는 아무 조짐도 없는 상황에서 몸을 상하게 하여 피를 흘리면서 몇 시간 째 뛰노는 그들은 백성들에게 미친 사람들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저는 대한예수교장로회(합신) 소속 목사입니다.

    현재 자비량으로 군선교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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