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0. 23. 22:51ㆍ성서유니온 매일성경/열왕기상
목차
열왕기상 20:13-21
찬송가 350장 우리들이 싸울 것은
징계를 받아 약해진 이스라엘, 232명과 7,000명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이스라엘을 위기에서 보호해 주셨습니다. 아람 왕 벤하닷이 큰 군대를 이끌고(13절) 이스라엘을 치려고 쳐들어 왔지만 적은 수였던 이스라엘이 아람을 크게 이겼습니다(21절).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큰 징계를 받았습니다. 그 징계는 바로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은 징계입니다. 징계를 받은 이스라엘은 많이 약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군대를 크게 일으킬 수 없었습니다. 군대의 숫자를 보니까 각 지방 고관의 청년들이 232명이고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서 7,000명이었습니다(15절). 도합 7,232명의 군대로 벤하닷의 큰 무리를 상대해야 했습니다. 만약에 그 싸움에서 이긴다면 이것은 기적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 선지자가 이스라엘의 아합 왕에게 나아가서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이 큰 무리를 보느냐 내가 오늘 그들을 네 손에 넘기리니 너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하셨나이다(13절)" 하나님께서는 한 선지자를 보내셔서 "너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여호와이십니까? 말씀하신 대로 행하시는 여호와이십니다. 그 말씀은 바로 "내가 오늘 그들을 네 손에 넘기리니"라는 말씀입니다. 사람 수만 보면 절대 이길 수 없는 싸움인데 이기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만약에 이 말씀대로 정말 이기게 된다면 그것은 여호와께서 하신 일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선제공격을 감행하는 아합
아합은 갑자기 순종모드로 변합니다(14절). 왜 갑자기 순종하는 사람이 되었을까요? 다른 방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순종하지 않으면 모든 것을 다 빼앗기게 될 처지에 있기 때문입니다. 아합은 "누가 싸움을 시작하리이까"라고 물었고 선지자는 "왕이니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14절). 이 대답에 따라서 아합은 선제공격을 했습니다. 먼저 232명의 청년들을 내보냈습니다(17절). 벤하닷은 그들이 나오는 것을 보고 받았지만 수가 너무 적었기 때문에 얕잡아 보았습니다. "그가 이르되 화친하러 나올지라도 사로잡고 싸우러 나올지라도 사로잡으라 하니라(18절)" 그는 그정도 숫자의 인원은 힘들이지 않고 사로잡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원어를 보면 여기 사로잡으라는 말은 생포하라는 뜻입니다. 즉, 죽이지 말고 살려서 잡으라는 뜻입니다. 전쟁에서 적을 죽이지 말고 생포하라니 이 명령은 말이 안 되는 명령입니다. 벤하닷은 이렇게 교만했습니다. 이 명령 때문에 아람 군대는 이 청년들을 죽일 수가 없었습니다.
선제공격이 먹히다
그 결과는 20절에 나옵니다. "각각 적군을 쳐죽이매 아람 사람이 도망하는지라 이스라엘이 쫓으니 아람 왕 벤하닷이 말을 타고 마병과 더불어 도망하여 피하니라(20절)" 여기서 "각각 적군을 쳐죽이매" 이 말은 각각 자기의 사람을 죽였다는 말입니다. 한 사람 당 한 명씩 붙었는데 7,232명이 각자 한 사람씩을 다 죽인 것입니다. 벤하닷은 처음 232명을 보고 생포하라고 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232명이 처음에 나왔을 뿐 뒤에 7,000명이 더 나왔습니다. "각 지방 고관의 청년들과 그들을 따르는 군대가 성읍에서 나가서(19절)" 그렇게 해서 한 번에 7,232명이 엎드러졌습니다. 이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왜냐하면 밴하닷이 적을 생포하라고 명령했기 때문입니다. 전쟁을 해서 붙었는데 한쪽은 죽일 수 있고 한 쪽은 죽일 수 없다면 당연히 죽일 수 있는 쪽이 이깁니다. 상대를 죽일 수 없다는 제한이 전투력을 상실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7,232명과 붙은 적이 다 죽었습니다. 한 번에 7천 명 이상이 엎드러진 것입니다. 아람 군대는 앞서나간 사람들이 우르르 죽어나가는 것을 보고 사기가 꺾였습니다. 죽일 수가 없으니 내가 죽지 않으려면 도망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진영이 무너졌고 이스라엘은 그들을 추격했습니다. 술을 마시고 취해있던 벤하닷(16절)은 황급히 말을 타고 도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앞에서 자기를 방어해 줄 아군이 다 도망갔기 때문입니다. 벤하닷은 교만 때문에 질 수 없는 싸움에서 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벤하닷이 심히 어리석은 명령을 내린 것은 교만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편에서 보면 이것은 기적이었습니다. 벤하닷이 술을 먹고 취해서 심히 교만하고 어리석은 명령을 내린 것도 기적이요, 그 어리석은 명령을 들은 군인들이 그 명령을 따르다가 죽고 우왕좌왕 도망가게 된 것도 기적이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된 일이었습니다. "누구를 통하여 그렇게 하시리이까(14절 상)"라는 아합의 물음에 하나님께서는 "각 지방 고관의 청년들로 하리라(14절 중)"라고 답하셨습니다. 이 말씀대로 232명이라는 아주 적은 숫자가 나온 것을 보고 아합이 그들을 얕잡아 보고 어리석은 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병법
이 전쟁을 살펴보면 말이 안 되는 지점이 너무 많습니다. 방어하기도 숫자가 부족한데 성 밖으로 나와서 선제공격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벤하닷은 232명이라는 소수가 나오니까 항복하러 나오는 것이겠거니 하고 안일하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수성작전을 버리고 선제공격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일을 했고 그 뒤로 우르르 전 군대가 성 밖으로 싸우러 나온 것입니다. 그러니 아람 군인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을 지키기도 모자른 병력으로 우 하고 싸우러 나왔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생포하라는 이상한 명령까지 받았으니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 모든 요건이 맞아 떨어졌는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했더니 승리했다는 것입니다. 어리석어 보이는 말씀이었지만 이 수는 이길 수 있는 단 하나의 수였습니다. 절묘한 수였습니다. 벤하닷의 교만한 말을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벌을 내리셨습니다.
약하다는 것은 곧 강하다는 것임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손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아무리 약해져있어도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벤하닷은 그들의 숫자만 보고 교만했습니다. 그들이 누구인지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약해도 대적은 우리를 건드릴 수 없습니다. 왜냐,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리고자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가뭄으로 징계하신 이유는 그들의 마음을 돌이키셔서 살리고자 하심입니다. 징계는 우리를 살리려는 것이지 약하게 해서 대적에게 해꼬지를 당하고 망하고 죽게 하려고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약하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손에서 강하다는 뜻입니다.
벤하닷의 교만, 스스로를 신처럼 생각하는 일의 위험성
벤하닷은 교만했습니다. 그 교만 때문에 전쟁에서 패배했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 16:18)"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교만할 수 없는데 벤하닷은 교만했습니다. 그는 숫자만 보았지 그 적은 숫자 뒤에 계신 하나님은 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교만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는 교만 때문에 하나님의 병법에 걸려들었습니다. 우리는 신이 아닙니다. 즉 우리는 아무 것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장담한다는 것은 내가 스스로를 신처럼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항상 우리 위에 하나님께서 계시고 하나님께서 뜻대로 만물을 주관하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합니다.
저는 대한예수교장로회(합신) 소속 목사입니다. 현재 자비량으로 군선교를 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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