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열왕기상 20장 22-34절 | 이스라엘과 아람의 두 번째 전쟁, 하나님을 멸시한 자를 살리고 높이는 아합

2023. 10. 24. 10:08성서유니온 매일성경/열왕기상

목차


    열왕기상 20:22-34

    찬송가 342장 너 시험을 당해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은 아합과 신하들의 말을 들은 벤하닷

    아합은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해서 이길 수 없는 전쟁에서 이겼습니다. 그 승리는 기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이한 방법으로 주신 승리였습니다. 아합은 위기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러자 그는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등한시 합니다. "그 선지자가 이스라엘 왕에게 나아와 이르되 왕은 가서 힘을 기르고 왕께서 행할 일을 알고 준비하소서 해가 바뀌면 아람 왕이 왕을 치러 오리이다 하니라(22절)" 아합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서 전쟁을 승리로 이끈 그 선지자가 아합에게 힘을 기르라고 권면합니다. 그런데 아합은 그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도 소집되어 군량을 받고 마주 나가서 그들 앞에 진영을 치니 이스라엘 자손은 두 무리의 적은 염소 떼와 같고 아람 사람은 그 땅에 가득하였더라(27절)" 힘을 기르고 군사를 훈련시키지 않은 결과 이스라엘의 병사들은 두 무리의 적은 염소 떼 같았습니다. 반면 아람 왕은 신하들의 말을 철저하게 따랐습니다. 먼저 벤하닷은 자기와 함께했던 도시국가들의 왕들을 떠나게 했습니다(24절). 그들과 술을 마시느라(20:16) 상황 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을 반성하는 조치였습니다. 그렇게 하고 지휘체계를 간소하게 했습니다. 왕들 대신에 총독들을 세운 것입니다(24절 하). 그렇게 하고 군대와 말과 병거를 보충했습니다(25절). 벤하닷은 그렇게 전쟁에 만반의 준비를 해서 다시 싸우러 왔지만 아합은 선지자의 말을 등한시하여 적은 염소 떼와 같이 힘 없는 모습으로 그들을 대하여 진을 칠 뿐이었습니다. 전황을 볼 때 당연히 아람이 이기는 모양새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교만한 말이 문제였습니다. 

    하나님을 멸시함

    "아람 왕의 신하들이 왕께 아뢰되 그들의 신은 산의 신이므로 그들이 우리보다 강하였거니와 우리가 만일 평지에서 그들과 싸우면 반드시 그들보다 강할지라(23절)" 그들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 온 우주의 창조주이시며 주관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하나의 산신으로 취급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모독하고 멸시한 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그냥 두실 수 없으셨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의 사람이 이스라엘 왕에게 나아와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에 아람 사람이 말하기를 여호와는 산의 신이요 골짜기의 신은 아니라 하는도다 그러므로 내가 이 큰 군대를 다 네 에 넘기리니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28절)" 이기기 불가능한 싸움인데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을 모독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싸우시는 분이십니다. 

     

    매일성경 | 열왕기상 20장 22-34절 | 이스라엘과 아람의 두 번째 전쟁, 하나님을 멸시한 자를 살리고 높이는 아합

     

    도저히 저항할 수 없는 힘에 의해서 패배하는 벤하닷

    다시 불가능한 일이 일어납니다. 일곱째 날에 이스라엘 자손이 하루에 아람 보병 십만 명을 죽인 것입니다. 적은 염소 떼 같았던 그들이 용맹한 전사들로 돌변했습니다. 아람 군대는 도망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아벡이라는 성읍으로 도망갔는데 이번에는 멀쩡했던 성벽이 이만 칠천 명의 군사들 위로 무너졌습니다(30절). 분명히 숫자를 보면 이기는 싸움인데 이상하게 지고 도망을 갔더니 이번에는 성벽이 무너지고 도저히 저항할 수 없는 힘에 철저하게 당하는 꼴이었습니다. 아람 왕 벤하닷은 너무 두려워서 성읍에 이르러 골방에 들어갔습니다(30절). 여기서 골방이라는 말은 원어로는 "골방 안에 골방"이라고 나옵니다. 그러니까 벤하닷은 너무 무서워서 숨을 수 있는 곳 깊숙이 숨고 또 숨었다는 뜻입니다. 그는 처절한 패배를 맛보았습니다. 

    하나님을 멸시한 자를 살리고 높이는 아합

    문제는 여기서부터 일어납니다. 벤하닷은 이제 완전히 겸손해졌습니다. 그저 자기 생명만 살려주면 좋겠다는 마음이 되었습니다. 이 때 아합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마치 자기 힘으로 승리한 것처럼 한껏 들뜨고 교만해져 있었을 것입니다. 벤하닷은 신하들의 말대로 신하들을 아합에게 보냈습니다. 굵은 베로 허리르 동이고 테두리를 머리에 쓰고 최대한 낮은 자세로 신하들을 아합에게 보내서 생명을 살려주기를 간곡하게 요청했습니다(31-32절). 이러한 요청에 아합이 어떻게 했어야 할까요? 이 벤하닷은 심히 교만하게 행했던 사람입니다. 그의 교만은 어떤 교만이었냐면 하나님을 멸시하는 교만이었습니다. 그는 두 번이나 하나님을 멸시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대적이기 전에 하나님의 대적이었습니다. 아합이 정신이 제대로 박힌 사람이었다면 벤하닷을 멸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벤하닷을 가리켜서 내 형제라고 하고 그를 병거에 올려 높여 주었습니다(33절). 하나님을 멸시한 죄는 사형에 해당합니다. 게다가 전쟁 중입니다. 아합은 하나님을 대표한 사람이고 벤하닷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승리할 수 없는 전쟁을 이기게 하셨습니다. 이 때 아합은 그 전쟁을 끝내야 했습니다. 그 끝은 하나님을 멸시한 자의 철저한 멸망입니다. 그러나 아합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벤하닷과 조약을 맺고 그를 놓아주었습니다(34절). 아합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죄를 방기하였습니다. 그도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였습니다.

     

    저는 대한예수교장로회(합신) 소속 목사입니다.

    현재 자비량으로 군선교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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