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0. 14. 22:01ㆍ성서유니온 매일성경/열왕기하
목차
열왕기하 23:31-24:7
찬송가 313장 내 임금 예수 내 주여
요시야의 개혁
요시야는 모세의 모든 율법을 따라 종교를 개혁했습니다(23:25). 그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모든 다른 길을 없애고 성전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유월절을 철저하게 지켰습니다(23:22). 유월절의 대속으로 죽음에서 건짐 받았음을 철저하게 기념한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유다에 대한 진노를 거두시지 않으셨습니다(23:26). 그렇다고 해서 요시야의 개혁이 헛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요시야의 개혁 덕분에 포로기 때 신실한 남은 자들이 많이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선하게 역사를 인도하신다는 것을 믿고 하나님 나라의 작은 한 부분으로서 성실하게 말씀에 따라서 살아야 합니다.
여호아하스의 악함
31 여호아하스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이십삼 세라 예루살렘에서 석 달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하무달이라 립나 예레미야의 딸이더라
32 여호아하스가 그의 조상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니
33 바로 느고가 그를 하맛 땅 리블라에 가두어 예루살렘에서 왕이 되지 못하게 하고 또 그 나라로 은 백 달란트와 금 한 달란트를 벌금으로 내게 하고
34 바로 느고가 요시야의 아들 엘리아김을 그의 아버지 요시야를 대신하여 왕으로 삼고 그의 이름을 고쳐 여호야김이라 하고 여호아하스는 애굽으로 잡아갔더니 그가 거기서 죽으니라
여호아하스는 23세에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석 달간 다스렸는데(31절) 그 짧은 시간에 그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습니다(32절).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사무엘서 열왕기 역대기 주석, 686쪽).
"여호아하스"가 왕위에 오를 때에 그의 나이 "23세"였으니, 그 부친 요시야 왕의 믿음과 선행을 보고 배웠을 터인데, 어찌하여 그는 "그의 조상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는지 알 수 없다. 아버지가 선하고 의로웠다고 해서 그 아들도 반드시 의로운 것은 아니다. 이것은 신앙생활은 은혜로만 이루어짐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여호아하스는 왕이 된 지 3개월 만에 애굽 왕에 의하여 "리블라"에 감금 되었다가 애굽으로 사로잡혀 가서 거기서 죽었다.
여선지 "훌다"의 예언과 같이 유다가 외국 세력에 의해 "빈 터"가 될(왕하 22:16-17) 전주곡이 이제부터 나타난다.
박윤선 목사님의 말씀대로 신앙생활은 은혜로만 이루어집니다. 여호아하스가 왜 요시야의 믿음을 본받지 못했을까하는 것은 여러 가지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여호아하스는 신앙의 공리주의 노선을 따랐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면 뭔가 실질적인 이로움이 따라와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입니다. 하나님을 잘 섬긴 것에 대한 보상이 갑자기 죽는 것이라면 하나님을 잘 섬겨 무엇하랴, 이런 심정이었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여호아하스가 왜 요시야의 믿음을 따르지 않았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이러한 공리주의는 지금도 만연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반드시 이익을 수반하지 않습니다. 여러 가지 유익이 있고 선한 일이 뒤따르지만 그것이 꼭 나 개인의 영달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나 개인은 하나님 나라 역사에서 작은 부분을 구성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의 역사가 어떻게 진행되는가에 따라서 개인의 부침이 결정됩니다. 믿음은 개인의 영화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하나님 나라에서 사명을 다하는 것에 의미가 있습니다.
여호아하스가 갇혔던 리블라는 오늘날 레바논 국경의 시리아쪽에 있습니다. 그곳은 바로 느고가 므깃도에서 요시야를 죽인 뒤에 자기의 진영을 세웠던 곳입니다. 이곳은 여호아하스가 사로잡혀 가고 약 20년 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유다를 상대로 전쟁을 벌일 때 진영을 세운 곳이기도 합니다(25:6-7, 18:21). 그러므로 하맛 땅 리블라는 유다가 멸망할 것을 넌지시 전하는 지명입니다.
여호야김
35 여호야김이 은과 금을 바로에게 주니라 그가 바로 느고의 명령대로 그에게 그 돈을 주기 위하여 나라에 부과하되 백성들 각 사람의 힘대로 액수를 정하고 은금을 징수하였더라
36 여호야김이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이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일 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스비다라 루마 브다야의 딸이더라
37 여호야김이 그의 조상들이 행한 모든 일을 따라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
여호야김은 바로 느고가 정한 벌금, 은 백 달란트와 금 한 달란트(33절)를 내기 위해서 백성들에게 징수했습니다(35절). 요시야가 바로 느고에게 패하여 죽은 이후 유다는 패전국으로 급격하게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여선지 훌다가 예언한 대로 역사가 흘러갔습니다.
36절에는 여호야김이 예루살렘에서 11년 간 다스렸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사무엘서 열왕기 역대기 주석, 687쪽).
얼핏보면 여기에 난제가 있는 것 같다. 단 1:1대로 느부갓네살의 유다 침략이 여호야김 제3년에 된 일이었다면 어떻게 그의 통치 기간이 11년이 될 수 있을까? 이 난제는 다음과 같이 해결된다. 곧, 느부갓네살이 여호야김 제3년에 유다를 침략하여 와서 바벨론에게 복속시키기까지 수년 동안 걸렸을 것이고, 여호야김이 바벨론에 복수하여 3년을 지냈다(왕하 24:1). 그 뒤에 여호야김이 바벨론을 배반하였으므로 느부갓네살이 다시 침략하여 와서 수년을 지난 후에 여호야김을 처치하였을 것이다. 그때의 전쟁이 몇 년 동안 계속되었을 터인데 본서의 저자는 그것을 생략한 듯하다.
박윤선 목사님의 주석을 볼 때 당시 유다가 얼마나 위아래로 치였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여호야김은 애굽의 패전국으로 벌금을 내는 처지에서 3년만에 신흥 강자로 떠오른 바벨론의 침략을 받았습니다. 그 때 수많은 포로가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여호야김은 예레미야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바벨론을 배반했습니다. 결국 바벨론의 침략을 다시 받아 비참하게 죽었습니다(렘 22:19; 36:30).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계속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보내셔서 바벨론에게 항복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여호야김은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습니다(37절). 유다가 참 가련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런 가련한 중에도 살 길이 반드시 있습니다. 살 길은 오직 우리 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길입니다. 순종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는 사람, 그 말씀을 깨달은 사람만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고 하나님과 마음을 나누는 교제를 계속해야하는 이유입니다.
바벨론의 침공
1 여호야김 시대에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올라오매 여호야김이 삼 년간 섬기다가 돌아서 그를 배반하였더니
여호야김은 애굽에서 부담시킨 벌금을 냈습니다. 애굽으로부터 큰 고통을 당한 것입니다. 그 고통이 다 가시기도 전에 그는 바벨론으로부터 침략을 당했습니다. 남쪽으로부터의 고통이 지나가자마자 곧바로 북쪽으로부터의 고통을 당했습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사무엘서 열왕기 역대기 주석, 687쪽).
이것은 여호야김이 왕이 된지 "제3년"에 된 일이다(대하 36:6; 단 1:2). 이때에 여호야김은 쇠사슬로 결박되어 바벨론으로 잡혀가도록 되었다가 바벨론에 충성하겠다고 서약하고 풀려난 것으로 생각된다. 대하 36:6의 "잡아가고"란 말은 "잡아가려고"라고 개역되어야 한다. 이 말씀이 잡아갔다는 것은 아니니, 느부갓네살이 그를 잡아가려다가 놓아준 것으로 생각된다.
여호야김이 삼년간 섬기다가 돌아서 그를 배반하였으니. 여호야김이 느부갓네살을 "배반"한 것은 하나님의 섭리를 거역한 죄악이다. 그가 그렇게 행동한 것은 거짓 선지자들의 권면을 따르고 예레미야의 말씀을 배척한 증거이다(참조. 렘 27:8-11).
여호야김은 예레미야를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자기 스스로를 구원하려고 했습니다. 그 시도는 성공하지 못할 시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시도는 당장에는 이익인 것처럼 보일지라도 결국에는 성공하지 못합니다.
그의 종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2 여호와께서 그의 종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갈대아의 부대와 아람의 부대와 모압의 부대와 암몬 자손의 부대를 여호야김에게로 보내 유다를 쳐 멸하려 하시니
박윤선 목사님은 "그의 종 선지자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사무엘서 열왕기 역대기 주석, 688쪽).
"그 종 선지자들"은 이사야, 미가, 하박국, 예레미야 등을 가리킨다(Delitzch). 느부갓네살이 유다 나라를 또다시 정복하였으니 이번에는 바벨론 속국들의 군대들도 동원된 것이다. 이렇게 바벨론이 유다를 다시 정복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된 것이다(참조. 렘 27:17).
우리는 어떤 일을 볼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시는가를 생각하면서 보아야 합니다. 유다를 쳐서 멸하는 주체는 "여호와"이십니다. 이 일에서 여호야김과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시기로 작정하셨다는 것을 먼저 깨달았어야 합니다. 이러한 깨달음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그의 종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들음으로 얻어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가를 항상 기억하고 마음에 간직해 두어야 합니다. 그래야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하나님의 의도를 깨닫고 돌이킬 수 있습니다.
곧 여호와의 말씀대로
3 이 일이 유다에 임함은 곧 여호와의 말씀대로 그들을 자기 앞에서 물리치고자 하심이니 이는 므낫세의 지은 모든 죄 때문이며
4 또 그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려 그의 피가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였음이라 여호와께서 사하시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시니라
유다가 전쟁으로 괴롭힘을 당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당신님 앞에서 물리치고자 하시기 때문입니다. 왜 물리치려고 하시는가 할 때 그 이유는 므낫세가 지은 죄 때문입니다(3절). 특별히 므낫세가 무죄한 자의 피를 많이 흘린 죄 때문입니다(4절).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린 죄는 반드시 속함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무죄한 자들의 생명에 대하여 그 값을 반드시 치르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
므낫세가 온갖 우상들을 섬긴 죄악과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린 죄(왕하 21:16)는 심히 중하여 유다 나라의 멸망 원인이 되었다(왕하 23:26-27). 이점에서 의문되는 것은, 왜 한 사람 므낫세의 죄값으로 온 국민이 망해야 되는가 하는 것이다. 이것은 난제와 같이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생각해야 된다. 비록 므낫세가 유다 나라의 지도자였을지라도 그가 비진리로 지도할 때에는 국민 된 자들이 그 잘못된 지도를 따르지 않을 자유가 있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때에 백성이 권세에 아부하여 왕의 불의한 지도를 따라 함께 범죄하였다. 그러므로 결국 그들의 멸망은 불의한 지도를 따라간 죄값으로 받는 보응인 것이다(왕하 21:8-9).
므낫세는 무지한 자의 피로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의 피를 흘리게 했는지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죄를 그대로 갚아주셨습니다. 우리는 무죄한 자로서 억울함을 당하는 자가 되어야지 그 반대가 되면 안 됩니다.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게 하는 가해자가 되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경외할 줄을 알아야 합니다.
애굽을 의지하는 어리석음
5 여호야김의 남은 사적과 행한 모든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6 여호야김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그의 아들 여호야긴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7 애굽 왕이 다시는 그 나라에서 나오지 못하였으니 이는 바벨론 왕이 애굽 강에서부터 유브라데 강까지 애굽 왕에게 속한 땅을 다 점령하였음이더라
7절에서 애굽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애굽은 유다에게 벌금을 징수했었지만 결국 바벨론에게 패했습니다. 유다에게 아무런 원조를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유다가 애굽의 원조를 바라보는 일은 헛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벨론의 멍에를 매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다의 왕들은 예레미야의 입에서 나오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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