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7. 7. 11:34ㆍ성서유니온 매일성경/예레미야
목차
예레미야 29:15-32
찬송가 425장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에게 희망이 있음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편지에 써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에게 보냈습니다. 그 편지에는 잡혀간 그곳에서 일반 생활을 잘 영위하면서 살고 번성하고 수가 줄어들지 말게 하라는 내용이 담겨있었습니다(29:5-6). 그리고 잡혀간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기도하라고도 했습니다. 그래야 너희도 평안할 것이라고 했습니다(29:7).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거짓 선지자에게 미혹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너희를 유다 땅으로 돌아오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27:10).
이어서 기도하라고 하시고 하나님을 구하고 찾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만나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27:12-13).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곧 하나님의 땅으로 돌아오는 것과 연결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모아서 사로잡혀 떠났던 그 곳, 즉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27:14). 이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내리신 징계를 달게 받는 것입니다. 만약 거짓 선지자의 말을 듣고 자기 뜻대로 행하면 재앙을 당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방지하시기 위해서 거짓 선지자의 말을 들으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 이어서 말씀하십니다(15절).
바벨론에서 선지자를
15 너희가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바벨론에서 선지자를 일으키셨느니라
16 다윗의 왕좌에 앉은 왕과 이 성에 사는 모든 백성 곧 너희와 함께 포로 되어 가지 아니한 너희 형제에게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
17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칼과 기근과 전염병을 그들에게 보내어 그들에게 상하여 먹을 수 없는 몹쓸 무화과 같게 하겠고
18 내가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그들을 뒤따르게 하며 그들을 세계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어 학대를 당하게 할 것이며 내가 그들을 쫓아낸 나라들 가운데에서 저주와 경악과 조소와 수모의 대상이 되게 하리라
19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들이 내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니라 내가 내 종 선지자들을 너희들에게 꾸준히 보냈으나 너희는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편지를 받은 사람들은 그 편지의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빨리 고향으로 돌아오고 싶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바벨론에서 선지자를 일으키셨느니라(15절)"라고 반응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들이 바라는 선지자는 포로에서 금방 해방될 것이라고 말할 선지자입니다. 그런데 만에 하나 금세 해방되된다고 해도 돌아오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유다에 남은 사람들이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17-18절).
몹쓸 무화과 같게 하겠고
예레미야 24장에는 하나님께서 두 광주리의 무화과를 예레미야에게 보이시는 장면이 나옵니다(24:1). 그 장면에서 한 광주리에는 극히 좋은 무화과가 있었고 다른 한 광주리에는 먹을 수 없는 극히 나쁜 무화과가 있었습니다(24:2). 좋은 무화과는 바벨론에 의해서 잡혀간 유다의 포로들을 뜻했습니다(24:5). 포로로 잡혀간 그들은 하나님께 전심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가 회복됩니다(24:7). 그렇게 되어서 다시 하나님의 땅으로 돌아오게 됩니다(24:6). 반면 포로로 잡혀가지 않은 사람들은 버림을 받아 흩어지고 환난을 당하게 됩니다. 부끄러움을 당하고 말거리가 되고 조롱과 저주를 받게 됩니다(24:9).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멸절하기까지 이르게 됩니다(24:10).
17절에 "상하여 먹을 수 없는 몹쓸 무화과 같게 하겠고"라는 말씀이 바로 이런 뜻입니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가나안 땅으로 빨리 돌아오는 것은 저주 가운데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살 길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서 바벨론에서 삶을 영위하는 것입니다. 빨리 돌아오는 것이 사는 길처럼 보이지만 그 길은 필경 죽음으로 가는 길입니다.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망하는 길이고 세계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어 학대를 당하는 길이고 나라들 가운데에서 저주와 경악과 조소와 수모의 대상이 되는 길입니다(18절). 이 말을 하는 이유는 돌아올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지를 알려주시기 위함입니다.
남아 있는 사람보다 포로로 잡혀간 사람이 더욱 복됨
포로로 잡혀가지 않고 남아있는 사람들이 더 복을 받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반대입니다.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돌이킵니다. 하지만 잡혀가지 않은 사람들은 끝까지 순종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보내셔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멍에를 메라고 하신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살 길을 가르쳐주었지만 그들은 듣지 않고 불순종했습니다. 그 결과는 예고된 대로 칼과 기근과 전염병입니다(27:8). 하나님께서는 듣지 않으면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치실 것이라고 분명히 경고하셨습니다. 남아 있던 사람들은 그 경고대로 멸망을 당하고 흩어짐을 당하고 민족들의 저주와 경악과 조소와 수모의 대상이 되었습니다(18절).
내가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보낸
20 그런즉 내가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보낸 너희 모든 포로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니라
남아 있는 것이 저주를 당하는 것이고 포로로 잡혀간 것이 오히려 복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보낸 너희 모든 포로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포로로 잡혀간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내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포로로 보내신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께 돌이키게 해서 언약을 회복시키시기 위함입니다. 즉 그들에게 재앙이 아니라 평안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미래와 희망을 주시기 위함입니다(29:11). 이것이 그들을 포로로 보내신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387쪽).
여기서는, 사로잡혀 간 유대인들에게 그들을 사로잡혀 가도록 하신 이가 하나님 자신이심을 기억시킨다. ... 1) 하나님께서는 그가 사랑하시는 백성에게도 타국에 포로 되어 가는 환난을 주시기도 하신다. 그 이유는, 환난은 참으로 그들에게 유익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환난을 받는 동안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되, 환난이 물러간 뒤에는 하나님을 멀리하는 것을 습성으로 가진다.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이런 환난을 그들에게 주시고 그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고 역설하심은 지당하다(참조, 히 12:7-13).
2) 하나님께서 그들을 징계하셨느니만큼, 그들을 구원하실 수 있는 힘도 그에게 있다. 욥 5:17, 18에 말하기를, "볼지어다 하나님께 징계 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징계를 업신여기지 말지니라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의 손으로 고치시나니"라고 하였다. 유대인들을 구원하실 수 있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자기 말씀을 들으라고 하심은 지당하다. 그가 이렇게 그들에게 자기 말씀을 들으라고 하시는 목적은, 포로들로 하여금 그의 말씀만 청종하고 거짓 선지자의 말은 듣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음 절에는 거짓 선지자들이 누구며 또한 그들이 받을 벌이 무엇임을 지적하신다.
거짓 선지자, 아합과 시드기야
21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골라야의 아들 아합과 마아세야의 아들 시드기야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그들은 내 이름으로 너희에게 거짓을 예언한 자라 보라 내가 그들을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넘기리니 그가 너희 눈 앞에서 그들을 죽일 것이라
22 바벨론에 있는 유다의 모든 포로가 그들을 저줏거리로 삼아서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너를 바벨론 왕이 불살라 죽인 시드기야와 아합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리니
23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중에서 어리석게 행하여 그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며 내가 그들에게 명령하지 아니한 거짓을 내 이름으로 말함이라 나는 알고 있는 자로서 증인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시니라
21절 이하에는 거짓 선지자가 누구인지 나옵니다. 거짓 선지자는 아합과 시드기야입니다. 그들이 누구인지 특정할 수 있도록 그들의 아버지의 이름까지 정확하게 말씀하십니다. 딱 집어서 그 두 명이 거짓 선지자이니 그들의 말을 듣지 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거짓 선지자들에게 심판을 선고하십니다. 그들은 느부갓네살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을 사용하셔서 그들을 죽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죽이시는 이유는 그들의 거짓 예언이 백성들을 망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죽어야 사람들이 그들을 거짓 선지자로 확실히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거짓 선지자라는 것을 확실이 깨닫는다면 사람들은 예레미야로 전달된 하나님의 말씀에 더욱 확신을 가지고 순종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저줏거리
그 두 사람, 아합과 시드기야는 바벨론으로 잡혀간 유다의 모든 포로들에게 저줏거리가 될 것입니다(22절). 바벨론 왕은 시드기야와 아합을 불살라 죽일 것이고 사람들은 누구에게 저주를 할 때 그 일로 저주를 할 것입니다. 그들이 저줏거리가 되는 이유는 그들이 행한 일이 명백하게 악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포로 중에 있으면서도 마음이 낮아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겸손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포로로 잡혀간 중에도 정욕대로 행했습니다. 그 이웃의 아내와 간음한 것입니다. 거기에 더해서 하나님께서 명령하지 않은 것을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해서 말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악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공개적으로 처형하셨습니다. 처형하실 뿐만 아니라 저줏거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낮추실 때 취해야 하는 태도와 행동
하나님께서 낮추실 때에는 낮아져야 합니다. 겸손하게 하실 때에는 겸손해야 합니다. 마음을 찢고 하나님께 돌이켜야 합니다. 날마다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며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거짓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 말씀을 굳게 붙들고 마음에 간직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낮추실 때 취해야 하는 행동입니다.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마음이 낮아졌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에서 아합과 시드기야는 마음이 낮아지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 마음이 정욕과 거짓으로 가득했습니다. 환난 중에도 그렇게 행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 상응한 처벌을 그들에게 내리셨습니다. 그런데 느부갓네살을 사용해서 처벌하셨습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390쪽).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죄악을 벌하심에 있어서 악한 사람들의 손을 통해서도 실행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이 세상에서 조석으로 일어나는 역사적 사건들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많다. 그러므로 독실한 신자는 그가 당하는 모든 사건들 가운데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있음을 알고, 두려워하기도 하며 기뻐하기도 하며 조심하시도 하며 경건하게 처신한다.
느헬람 사람 스마야
24 너는 느헬람 사람 스마야에게 이같이 말하여 이르라
25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가 네 이름으로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백성과 제사장 마아세야의 아들 스바냐와 모든 제사장에게 글을 보내 이르기를
26 여호와께서 너를 제사장 여호야다를 대신하여 제사장을 삼아 여호와의 성전 감독자로 세우심은 모든 미친 자와 선지자 노릇을 하는 자들을 목에 씌우는 나무 고랑과 목에 씌우는 쇠 고랑을 채우게 하심이어늘
27 이제 네가 어찌하여 너희 중에 선지자 노릇을 하는 아나돗 사람 예레미야를 책망하지 아니하느냐
28 그가 바벨론에 있는 우리에게 편지하기를 오래 지내야 하리니 너희는 집을 짓고 살며 밭을 일구고 그 열매를 먹으라 하셨다 하니라
포로로 잡혀간 유대인들과 본토 간에는 소통이 원활했습니다. 고대 세계라서 서로 간의 소식이 잘 전해지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은 틀린 생각입니다. 상상 이상으로 빠르게 소식을 주고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의 편지는 포로로 잡혀간 유대인 공동체 안에서 즉각적으로 그리고 빠르게 퍼졌을 것입니다. 그것을 알 수 있는 구절이 24-28절입니다. 그 편지에 대한 반응으로 느헬람 사람 스마야가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백성과 제사장 스바냐와 모든 제사장에게 글을 보낸 것입니다.
스마야는 제사장 스바냐에게 왜 예레미야를 제어하지 않느냐고 항의합니다(26-27절). 스바냐가 맡은 제사장 직분이 성전 감독자로서 모든 미친 자와 선지자 노릇 하는 자들을 제어하는 것이 아니냐고 합니다(26절). 그러면서 어찌하여 예레미야의 선지자 노릇에 대해서 책망하지 않느냐고 합니다(27절). 스마야가 그렇게 격분해서 편지를 쓰는 이유는 예레미야의 편지 내용 때문입니다. 예레미야가 "오래 지내야 하리니 너희는 집을 짓고 살며 밭을 일구고 그 열매를 먹으라"는 편지가 가당한 편지냐, 이런 항의입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391쪽).
스마야는 자기 자신이 참 선지자인 듯이 자기의 위세를 드러낸다. 언제든지 거짓 선지자들은 참 선지자인 듯이 나타나는 법이다. 고후 11:13-15에 말하기를, "그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스마야는 예레미야를 가리켜 "미친 자와 선지자 노릇을 하는 자들"이라고 하였다. 이 세상에 속한 자들이 하나님께 속한 자들을 가리켜 미쳤다고 하는 것은 필연적인 사실이다. 그 이유는 전자(세상에 속한 자)는 후자(하나님께 속한 자)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가족들도 예수님을 미쳤다고 하였고(막 3:21), 베스도는 바울을 미쳤다고 하였다(행 26:24). 스마야와 예레미야의 충돌점은 이렇다. 곧 스마야의 주장은 일반 거짓 선지자들의 주장과 같이(28:3), 바벨론에 있는 유대인 포로들이 오래지 않아서 유다 본토에 쉬이 돌아오게 된다는 것이고, 예레미야의 주장은 유대인의 포로 생활이 오랫동안 계속된다는 것이다(29:28). 스마야와 기타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바 없이, 다만 민족주의적인 혈육의 충동에 의하여 유대인들의 그릇된 애국 심리에 호소하였고, 예레미야는 그 민족을 사랑하지 않은 바 아니나 냉정하게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데서 유다 민족의 진로를 진리로 말한 것이다. 혈육에 의하여 지도하는 애국자들은, 그 주장이 비록 의로운 것같이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덤비는 한, 거짓 스승들이다. 대중이 그들을 따른다 할지라도 그들은 거짓 스승이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고요한 하나님의 음성에 의하여 사람들을 가르쳤으니, 그는 진정한 선지자이다. 거짓 선지자들이 목표한 대로의 민족의 귀환은 본토에 귀환함을 중점으로 했고, 예레미야가 목표한 대로의 귀환은 하나님에게 귀환함을 요점으로 한다.
혈과 육과 영적인 것의 대조
우리가 이 말씀을 민족주의의 입장에서 본다면 스마야가 옳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혈과 육으로 하나님 나라를 이어받을 수 없습니다(고전 15:50).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닙니다(엡 6:12). 민족주의도 혈과 육에 속한 것입니다. 나라가 회복되어서 포로 생활을 빨리 끝내는 것은 민족주의 입장에서 너무 좋은 것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땅으로 물리적으로 돌아온다는 것이 반드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에 있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유배 생활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지름길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로 말씀하시는 요지는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스스로 구원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해서 살라는 것입니다.
스마야에게 임할 심판
29 제사장 스바냐가 스마야의 글을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읽어서 들려 줄 때에
30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31 너는 모든 포로에게 전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느헬람 사람 스마야를 두고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그를 보내지 아니하였거늘 스마야가 너희에게 예언하고 너희에게 거짓을 믿게 하였도다
32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느헬람 사람 스마야와 그의 자손을 벌하리니 그가 나 여호와께 패역한 말을 하였기 때문에 이 백성 중에 살아 남을 그의 자손이 하나도 없을 것이라 내가 내 백성에게 행하려 하는 복된 일을 그가 보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제사장 스바냐는 스마야의 글을 예레미야에게 읽어주었습니다(29절). 스바냐는 예레미야를 존중하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21장 3절과 37장 3절에 보면 스바냐는 시드기야가 예레미야에게 보내는 사람 중 한 사람입니다. 그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했습니다(30절). 여호와께서는 모든 포로에게 이 말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31절 상). 그 말은 여호와께서 느헬람 사람 스마야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먼저 스마야는 여호와께서 보내신 사람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스마야는 권위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가 하는 예언은 거짓입니다. 그는 거짓을 믿게 하는 거짓 선지자입니다(31절).
스마야의 격분과 격노에 따르는 결과
하나님께서는 그의 행동을 벌하시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스마야와 그의 자손을 벌하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 자손을 벌하시는 내용은 그 자손들이 한 사람도 하나님께서 행하실 선한 일을 볼 수 없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스마야의 대가 곧 끊길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당연한 처분입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392쪽).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그대로 믿지 않는 자는 그 약속이 내포하고 있는 축복을 받지 못하게 된다. 스마야는 70년을 지내야 유대인 포로들이 해방된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반역하였으니만큼("패역한 말을 하였음을 인하여"), 위에 관설된 화를 받아 마땅하다.
메튜 헨리 목사님은 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
살아있는 동안에 하나님의 은총을 바라며 살기를 기뻐하지 않는 자들은 훗날에 하나님께서 그의 교회에 내리시는 은총을 나누어 받을 가치가 없는 자들임을 기억하자. 스마야는 예레미야가 포로들에게 바벨론에서 그들의 가족들이 번성하는 것을 볼 수 있도록 노력하라고 충고한 사실에 대하여 격노하였었다. 또한 예레미야가 포로들이 번성하고 줄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데 대하여 노하였다. 이렇게 예언한 예레미야가 못마땅하여 예루살렘에 편지를 쓴 스마야가 거기서 자손을 볼 수 없으리라는 것은 사필귀정이다. 또한 하나님의 축복된 말씀을 경시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은덕을 상실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말씀에 담긴 하나님의 사랑을 읽어야 함
스마야는 예레미야의 편지에 담긴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반대했습니다. 반대했을 뿐만 아니라 메튜 헨리 목사님의 주석대로 격노했습니다. 그의 격노가 그의 편지에 드러나 있습니다. 그는 예레미야를 미친 사람이라고 하면서 그를 제어하지 않는 스바냐를 책망한 것입니다. 그의 격노는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격노입니다. 하나님께서 재앙 중에서 긍휼을 베푸시는 것을 적대하는 격노입니다. 이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그가 격노한 대로 그대로 갚아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찾으라는 예레미야의 편지에 마음을 열고 그 말씀을 간직했더라면 그는 하나님을 찾으며 간구하고 만났을 것입니다. 그렇게 했다면 그와 그 자손은 하나님께서 행하실 복된 일을 보고 기뻐했을 것입니다. 미래에 희망을 가졌을 것입니다. 포로로 잡혀 있는 상황이 희망을 앗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적대하는 죄가 희망을 앗아가는 것입니다. 매순간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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