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7. 27. 18:32ㆍ성서유니온 매일성경/예레미야
목차
예레미야 38:14-28
찬송가 312장 너 하나님께 이끌리어
목숨을 건진 예레미야
예레미야는 유다의 고관들에게 죽임을 당할 뻔했습니다. 그들은 예레미야를 죽이라고 시드기야 왕에게 청원했고 시드기야 왕은 예레미야를 그들에게 내어주었습니다(4-5절). 예레미야는 물없는 구덩이에 던져졌습니다. 그 구덩이에는 진창이 있있습니다. 진창 속에 빠진 것입니다. 그런 예레미야를 왕궁 내시 에벳멜렉이 구해주었습니다. 에벳멜렉은 시드기야 왕에게 고관들이 한 일이 악하다고 하면서 용감하게 아뢰었습니다(9절). 그렇게 하고 왕의 명을 받아 예레미야를 구덩이에서 건져 올렸습니다(12절). 예레미야는 시위대 뜰에서 머물게 되었습니다(13절). 이어지는 본문은 그 다음에 이어지는 사건을 다룹니다.
시드기야 왕이 예레미야를 은밀하게 부름
14 시드기야 왕이 사람을 보내어 선지자 예레미야를 여호와의 성전 셋째 문으로 데려오게 하고 왕이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내가 네게 한 가지 일을 물으리니 한 마디도 내게 숨기지 말라
시드기야 왕은 예레미야를 여호와의 성전 셋째 문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데리고 와서 예레미야에게 물었습니다. 성전 셋째 문은 어느 문인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곳은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었을 것입니다. 시드기야는 예레미야를 은밀히 만나기를 원했습니다. 그 이유는 뒤에 나옵니다. 시드기야는 예레미야에게 "내가 네게 한 가지 일을 물으리니 한 마디도 내게 숨기지 말라"라고 하였습니다. 예레미야는 무엇이든 숨기지 않고 다 전했습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507쪽).
예레미야는 바벨론 침략 하에 있는 유다 국난(國難)에 대하여 그 받은바 계시를 벌써 시드기야 왕에게 여러 차례 말하였다(21:4-10; 32:4; 34:2-6). 그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시드기야 왕은 여기서, 예레미야의 받은 계시("한 가지 일")에 대하여 별달리 자세히 묻는다.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자들은, 벌써 알려진 말씀은 믿지 않으면서 공연히 더 자세한 것만을 캐려고 한다. 이것은 불신앙 병의 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점에 있어서, 예수님을 믿는데 투신(投身)하지 않고 질문만을 위주한 빌라도의 간사한 태도를 시드기야와 비교해 볼 수 있다(참조. 요 18:33-38; 19:10-11). 그리고 어디까지나 진리를 믿지 않으려는 바리새 교인들이 예수님의 권능으로 고침받은 사람(소경이었던 사람)에게 여러 차례 질문만 하였던 사실도 이와 같은 것이다(요 9:13-33).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보기만 하고 믿지는 않은 사람들이 많으니 벨릭스가 그와 같은 자이다(행 24:24, 25).
믿지 않는 자의 특징
시드기야 왕은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질문을 계속 했습니다. 믿지 않으면서 두려웠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 질문만 해댄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을 사랑했더라면 하나님께 회개하고 그 말씀을 달게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마음에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도 사랑도 없었습니다. 사랑했다면 그는 두려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요일 4:18). 어떤 일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는 것은 좋으나 행동해야 할 때에 질문만 하고 앉아있는 것은 좋지 못합니다. 특별히 믿음의 문제는 더 중요합니다. 심판의 때가 임박해가기 때문입니다.
나를 죽이지 아니하시리이까
15 예레미야가 시드기야에게 이르되 내가 이 일을 왕에게 아시게 하여도 왕이 결코 나를 죽이지 아니하시리이까 가령 내가 왕을 권한다 할지라도 왕이 듣지 아니하시리이다
16 시드기야 왕이 비밀히 예레미야에게 맹세하여 이르되 우리에게 이 영혼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너를 죽이지도 아니하겠으며 네 생명을 찾는 그 사람들의 손에 넘기지도 아니하리라 하는지라
예레미야는 시드기야에게 자기를 죽이지 않을 것인지 묻습니다. 그렇게 묻는 이유는 시드기야가 듣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15절). 예레미야는 시드기야가 듣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전해야 했습니다. 시드기야는 예레미야에게 비밀히 맹세했습니다. 그를 죽이지 않고 그를 죽이려는 사람들에게 넘기지도 않겠다고 맹세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508쪽).
이 말("왕이 결코 나를 죽이지 아니하시리이까")은 예레미야가 기어코 죽기를 무서워서 한 것이 아니라, 다만 그의 생명을 쉽사리 악인들에게 내어 주면서 그의 예언을 신중히 듣지 않는 왕의 부주의를 경고하는 것뿐이다.
일설에 이 구절에 나타난 예레미야의 말은 그가 사실상 죽는 것을 두려워하여 한 것이라고 한다. 선지자와 사도들은 주님을 위하여 생명 바치기를 기쁘게 여겼으며, 사명을 다하기도 전에 일부러 죽음을 무릎쓰지는 않았다. 그들도 죽음을 피해야 할 경우에는 피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참조. 37:20 해석).
항복하면 네 생명이 살겠고
17 예레미야가 시드기야에게 이르되 만군의 하나님이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만일 바벨론의 왕의 고관들에게 항복하면 네 생명이 살겠고 이 성이 불사름을 당하지 아니하겠고 너와 네 가족이 살려니와
18 네가 만일 나가서 바벨론의 왕의 고관들에게 항복하지 아니하면 이 성이 갈대아인의 손에 넘어가리니 그들이 이 성을 불사를 것이며 너는 그들의 손을 벗어나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예레미야는 시드기야에게 "만군의 하나님이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만군의 하나님은 모든 군대의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 전쟁에서 군대를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뜻은 시드기야가 항복하는 것입니다. 시드기야가 만일 바벨론의 왕의 고관들에게 항복하면 그의 생명이 길 것이고 그 성이 불사름을 당하지 않고 그와 그 가족이 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17절 하). 그러나 만일 항복하지 않으면 그 성이 바벨론 군대에 의해서 점령되고 불사름을 당할 것이고 시드기야는 붙잡힐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하나님의 징계를 달게 받으면 살고 자기 힘으로 그것을 피하려고 하면 재앙을 당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입니다. 즉 이스라엘을 위하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셔서 주신 말씀입니다. 여호와로서 이스라엘에게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입니다. 시드기야가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은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신다는 것을 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구절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509쪽).
이 말씀은 또다시 전에 많이 예언했던 내용(21:8-9; 22:11이하; 38:1이하)을 반복한 것이다(참조. 2, 3절 해석). 이런 말은 사실상 하나님 앞에서 회개할 줄 모르는 그 시대에 반역자로 몰리기 쉬운 위험한 말이다(38:4; 37:13). 그러나 예레미야는 그것이 하나님께서 그 시대에 주신 말씀인 것만큼, 그것을 골자로 예언한 것이다. 이때로 말하면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던 위태한 시기였다. 시드기야에게 주는 선지자의 예언에 "항복하면 ... 살겠다"고 하는 것은 결코 국가를 반역하는 말이라고 할 수 없다. 하나님을 모르는 민족도 그런 위기에는 적군에게 항복하는 것만이 지혜로운 일이고 민족을 구원하는 길이다. 하물며, 살아 계신 여호와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서만 보존되는 유다 나라가 하나님의 선지자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순종해야만 될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박윤선 목사님의 말씀이 정확합니다. 항복했으면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나라라도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시드기야는 항복하면 살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보다 다른 것들을 더 두려워했습니다.
두려워하노라
19 시드기야 왕이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나는 갈대아인에게 항복한 유다인을 두려워하노라 염려하건대 갈대아인이 나를 그들의 손에 넘기면 그들이 나를 조롱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20 예레미야가 이르되 그 무리가 왕을 그들에게 넘기지 아니하리이다 원하옵나니 내가 왕에게 아뢴 바 여호와의 목소리에 순종하소서 그리하면 왕이 복을 받아 생명을 보전하시리이다
시드기야는 예레미야에게 "나는 갈대아인에게 항복한 유다인을 두려워하노라"라고 말합니다. 그는 하나님 말고 다른 것을 두려워한 것입니다. 그는 조롱 받을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갈대아인이 나를 그들의 손에 넘기면 그들이 나를 조롱할까 하노라"
이러한 시드기야의 염려 섞인 대답에 예레미야는 그 무리아 왕을 그들에게 넘기지 않을 것이라면서 안심시켰습니다. 그러면서 다시금 여호와의 목소리에 순종할 것을 종용했습니다. 순종하면 복을 받아서 생명을 보전할 것이라고 일관되게 말했습니다. 시드기야는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39장). 그가 하나님을 믿지 않은 이유는 하나님 말고 다른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하나님 말고 다른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은 다른 모든 것을 두려워합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509쪽).
예레미야의 항복 권고를 받은 시드기야는 그가 항복하지 못할 이유로서 이미 항복한 유대인들이 두렵다는 것이다. 이미 항복한 유대인들은 시드기야와 다르게 주장을 세워 저렇게 행동을 취했으니만큼, 친애굽주의자들을 따르던 시드기야가 뒤따라 항복하는 것은 그들(이미 항복한 유대인들)의 조롱거리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드기야의 이와 같은 행동은 예레미야의 권위가 바로 하나님의 말씀 권위라는 것을 아직도 믿지 못한 데서 생긴 것이다. 누구든지 하나님 말씀을 순종함에 있어서는, 비록 추후에 했다 하더라도, 하나님에게서 받을 은혜는 마찬가지이다.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한 데나리온을 약속하고 포도원에 일하러 온 일꾼들 중에 나중 온 자나 먼저 온 자나 다 마찬가지로 한 데나리온씩 받았다(마 20:1-16). 시드기야는 그저 회개하고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여 따를 뿐이고, 아무 다른 문제도 염두에 두지 않았어야 된다. 회개자는 하나님만 상대하고 행동한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앞길을 전부 맡아 주실 것이었다.
순종하는 사람은 하나님만 생각함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때에는 하나님만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신다고 하시면 "아멘" 하고 믿고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다른 것을 덧붙여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완악하여 하나님께 순종 못할 핑계를 항상 찾습니다. 그 핑계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자기 자신"입니다. 시드기야의 경우에는 자기의 체면과 위신이 핑계거리였습니다. 시드기야는 체면과 위신을 보전하려다가 아주 비참한 처지에 들어갑니다. 하나님께 순종했으면 오히려 지켜질 체면과 위신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살 길은 오직 하나님께 순종하는 길밖에는 없습니다. 그 길에서 다른 사람을 생각할 것이 없습니다. 누가 먼저 순종했느니, 나는 앞서니 뒷서니를 따질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순종이 늦어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은혜는 같습니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기회를 잡아 하나님께 돌이켜야 합니다. 그 기회를 잡아야 하는 시점은 "지금"입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2)"
항복하기를 거절하시면
21 그러나 만일 항복하기를 거절하시면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신 말씀대로 되리이다
22 보라 곧 유다 왕궁에 남아 있는 모든 여자가 바벨론 왕의 고관들에게로 끌려갈 것이요 그 여자들은 네게 말하기를 네 친구들이 너를 꾀어 이기고 네 발이 진흙에 빠짐을 보고 물러갔도다 하리라
23 네 아내들과 자녀는 갈대아인에게로 끌려가겠고 너는 그들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바벨론 왕의 손에 잡히리라 또 네가 이 성읍으로 불사름을 당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예레미야는 항복하기를 거절하면 재앙이 닥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약한 여자들이 끌려갈 것이라고 합니다. 그 가족이 보호 받지 못하고 끌려갈 것이라고 합니다. 시드기야가 아무리 도망가려고 애써도 도망가지 못할 것이요, 예루살렘 성은 불사름을 당할 것이라고 합니다(21-23절). 39장에 보면 이 경고대로 되었습니다. 그의 아들들은 시드기야의 눈 앞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39:6). 시드기야가 순종했더라면 막을 수 있었던 비참한 결말이었습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이 구절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510쪽).
이 부분 말씀은 ...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을 경우에 당할 시드기야의 불행을 다시 일러준다. ... 시드기야 왕은 자기가 항복하는 경우에 자기를 조롱하는 자들이 있을 것이라고 공연한 염려를 하고 있었으나(18절), 실상은 그가 항복하지 않는 경우에 더 견디기 어려운 조롱이 있을 것이라고 예레미야는 여기 말한다. 곧, 그의 궁녀들이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가면서 그를 조롱하리라는 것이다. 그 조롱의 내용은 이러하니, 시드기야 왕의 친구들(거짓 선지자들)이 시드기야를 꾀어 수렁탕에 빠뜨린 것처럼 실패하게 만들어 놓고 물러갔다는 것이다. 이 조롱은 실상 시드기야가 모든 거짓 선지자들 때문에 속아 나라를 망쳤다는 것이다.
조롱을 두려워하는 사람에게 더한 조롱이 닥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가 받는 처분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다른 모든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런데 두려워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두려워하는 그 일이 닥칩니다. 아니 더한 일이 닥치는 것입니다. 그것을 피할 방법은 오직 회개함으로 하나님께 돌이키는 것입니다.
고관들을 두려워함
24 시드기야가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너는 이 말을 어느 사람에게도 알리지 말라 그리하면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25 만일 고관들이 내가 너와 말하였다 함을 듣고 와서 네게 말하기를 네가 왕에게 말씀한 것을 우리에게 전하라 우리에게 숨기지 말라 그리하면 우리가 너를 죽이지 아니하리라 또 왕이 네게 말씀한 것을 전하라 하거든
26 그들에게 대답하되 내가 왕 앞에 간구하기를 나를 요나단의 집으로 되돌려 보내지 마소서 그리하여 거기서 죽지 않게 하옵소서 하였다 하라 하니라
27 모든 고관이 예레미야에게 와서 물으매 그가 왕이 명령한 모든 말대로 대답하였으므로 일이 탄로되지 아니하였고 그들은 그와 더불어 말하기를 그쳤더라
28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이 함락되는 날까지 감옥 뜰에 머물렀더라
시드기야는 예레미야에게 자기와 나눈 대화를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합니다. "그리하면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라고 합니다. 그는 고관들을 두려워했습니다. 고관들이 예레미야에게 물을 때 할 말까지 일러줍니다. 예레미야가 요나단의 집으로 돌려 보내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고 하라고 합니다(25-26절). 시드기야의 예상대로 고관들은 와서 예레미야에게 물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시드기야에게 말한 그대로 전했습니다. 예레미야는 그렇게 예루살렘이 함락되는 날까지 감옥 뜰에 머물렀습니다(27-28절).
시드기야는 먼저 항복한 유다인들이 자기를 조롱할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런데 이 구절들을 보니까 그는 고관들도 두려워했습니다. 또한 그는 바벨론 왕도 두려워했습니다. 그는 주변 모든 이들을 두려워한 것입니다. 딱 한 분, 가장 두려워할 분이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만군의 하나님이신 이스라엘의 하나님(17절)"을 두려워하지 않은 것입니다. 만군의 하나님이라는 칭호는 모든 군대의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바벨론이 자기를 치는 상황은 그 근본을 들어가보면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으로 무섭게 하심은 그것을 보고 당신님께로 돌아오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드기야는 얼마나 완악한지 하나님께로 돌이킬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의 눈은 가려져 있었습니다. 돌아가는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이 구절들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510-511쪽).
이 부분 말씀은, 시드기야 왕이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따라가기는커녕, 그 예언의 내용을 들어 본 일까지도 방백들에게 탄로 날까 하여 두려워한 것을 보여 준다. 그는 이렇게 비겁하였다. 그의 공포심의 원인은, 1) 거짓 선지자들과 한 무리가 되는 방백들의 거짓된 지도를 이탈(離脫)할 만한 신앙과 용기가 없는 까닭이다. 그는 원래 하나님의 말씀에 무식하고 어두워져 있었으니 만큼, 빛과 어두움을 밝히 분별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온 천하에 공포(公布)해야 할 예레미야의 예언 내용을 감춰두기를 원하였다. 2) 그는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두려워한 까닭이었다. 생사 문제가 하나님께만 달려 있는 것을 믿는 자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누구든지 자기의 성패(成敗) 문제가 사람에게 달린 줄 아는 자는 언제든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신앙 용단하는 일이 없고 사람들을 두려워할 뿐이다.
이렇게 시드기야 왕은 하나님의 말씀이 드러날까 두려워하고, 고관들은 그 말씀을 박해하였으니만큼,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이 함락되는 날까지 감금되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28절). 예레미야의 예언은 그대로 성취되어 과연 바벨론 군대는 예루살렘을 포위했으나, 그 때 유대 민족의 지도자들은 이 사실을 보면서도 믿지 않고 선지자를 박해하였다.
박윤선 목사님도 똑같이 말씀합니다. 여기서 그가 지적하는 것은 고관들이 거짓 선지자들과 한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시드기야는 거짓된 무리에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그가 자초한 일입니다. 그가 진작 예레미야의 말을 들었더라면 처음부터 순종함으로 나갔더라면 그의 주변은 정리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귀가 가려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바른 교훈을 받지 않고 자기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둔 사람이었습니다(딤후 4:3). 이것은 마지막 때에 일어날 일이라고 바울 사도가 경고한 것입니다. 그 다음 말씀은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딤후 4:3)"입니다.
스승을 많이 둘 수 있는 시대에 주의해야 하는 것
우리는 우리가 듣는 것에 주의해야 합니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스승을 쉽게 둘 수 있는 시대입니다. 우리가 듣기 좋아하는 강의나 영상이 휴대폰에 계속 뜨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으로 우리 주변을 채워버리면 참된 말씀이 들릴 때 그것에 순종하기 어렵습니다. 그렇게 하기보다 잠잠히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 하나를 붙들고 씨름하며 그것을 주제로 하나님께 아뢰고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이 마지막 때에 우리가 할 일입니다. 시드기야처럼 거짓의 무리에게 둘러싸여 있으면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갖가지 정보에 두려움만 더 커지게 됩니다. 만약 그렇게 하고 있다면 속히 돌이키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한 분만 경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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