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예레미야 50장 33-46절 | 바벨론에 대한 심판과 우리의 구원

2024. 8. 17. 16:48성서유니온 매일성경/예레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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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예레미야 50:33-46

    찬송가 348장 마귀들과 싸울지라


    바벨론에 대한 심판

    바벨론에 대한 심판 예언이 계속 이어집니다. 바벨론에 대한 심판은 하나님 백성에게는 구원입니다. 이사야(사 45장)도 그렇게 말씀하고 요한계시록도 그렇게 말씀합니다(계 18장). 이 바벨론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세력을 상징합니다. 

     

    33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이스라엘 자손과 유다 자손이 함께 학대를 받는도다 그들을 사로잡은 자는 다 그들을 붙들고 놓아 주지 아니하리라
    34   그들의 구원자는 강하니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라 반드시 그들 때문에 싸우시리니 그 땅에 평안함을 주고 바벨론 주민은 불안하게 하리라

     

    이스라엘 자손과 유다 자손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이들은 바벨론으로부터 학대를 당했습니다. 바벨론은 그들을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았습니다(33절). 이것은 죄와 사망 세력이 하나님의 백성을 인질로 잡고 놓아주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다 죄를 범했습니다. 그 결과는 죽음입니다. 아무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구원자는 죽음보다 강하십니다(34절).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이십니다. 모든 군대의 하나님, 싸워서 승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그 땅에 평안함을 주실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평안을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바벨론 주민, 즉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은 불안하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과 싸우시고 승리하셨습니다. 십자가로 죽음을 맞이하시고 부활로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생명으로 죽음을 삼키신 것입니다. 그로 인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습니다. 죽음의 포로 상태에서 건짐을 받은 것입니다. 그렇게 하시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영적인 존재들을 불안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날, 불못에 던져질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 그 날이 당도할지 매우 불안합니다. 우리는 승리했고 그들은 패배했습니다. 우리의 구원자는 이렇게 강하십니다. 

    칼이 위에 떨어지리라

    35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칼이 갈대아인의 위에와 바벨론 주민의 위에와 그 고관들과 지혜로운 자의 위에 떨어지리라
    36   칼이 자랑하는 자의 위에 떨어지리니 그들이 어리석게 될 것이며 칼이 용사의 위에 떨어지리니 그들이 놀랄 것이며
    37   칼이 그들의 말들과 병거들과 그들 중에 있는 여러 민족의 위에 떨어지리니 그들이 여인들 같이 될 것이며 칼이 보물 위에 떨어지리니 그것이 약탈되리라

     

    35-37절까지 "칼"이란 단어가 다섯 번 나옵니다. 칼은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합니다. 칼은 먼저 바벨론의 모든 주민 위에 떨어지고 그 다음으로 지혜로운 자의 위에 떨어집니다(35절). 그 누구도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습니다. 특히 아무리 지혜로워도 위에서 떨어지는 칼과 같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사람의 지혜로는 심판을 면할 수 없으나 하나님의 지혜인 십자가로는 심판을 면할 수 있습니다(고전 1:21, 24).

     

    그 다음으로 칼은 자랑하는 자의 위에 떨어집니다. 하나님 아닌 것으로 자랑을 삼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 세상에서는 그것이 멋있어 보입니다. 자주적으로 사는 삶이 멋있어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멋있어 보이는 삶이 하나님의 칼이 위에서 떨어질 때에는 어리석은 것으로 드러납니다. "그들이 어리석게 될 것이며(35절 중)" 그때에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참으로 지혜로운 것이요 스스로 자랑하는 것이 참으로 어리석은 것임이 온전히 드러납니다. 스스로 자랑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직 하나님을 자랑하시기 바랍니다. 

     

    그 다음으로 칼은 용사의 위에 떨어집니다. 아무리 용감하고 강해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용사는 용감해서 놀라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들이 놀랄 것이며(36절)" 그러나 그들이 놀란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에는 인간의 용감함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 땅에 용감한 사람 중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용감해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하여도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는 놀라고 떨며 두려워할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사람의 용감함은 참 헛된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칼은 그들의 말들과 병거들과 그들 중에 있는 여러 민족 위에 떨어집니다(37절). 그들이 갖춘 무기들이 심판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전신 갑주로 무기를 삼는 사람들입니다(엡 6:11-17). 우리가 하나님의 전신 갑주로 무장하는 이유는 악한 날에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입니다(엡 6:13). 즉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서 하나님으로부터 잘했다고 칭찬을 듣기 위함입니다. 반면 불신자들은 하나님 아닌 다른 것들로 무기를 삼습니다. 말들과 병거들과 그들이 고용한 용병들로 무기를 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무기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 다음으로 칼은 보물 위에 떨어집니다(37절 하). 그 어떤 보물로도 하나님의 심판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보물은 우리가 죽을 때 다 빼앗깁니다. 약탈을 당합니다. 그 어떤 것도 영원히 우리의 소유가 될 수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한 것만 영원히 우리의 것이 됩니다. 믿는 우리는 영원한 보물을 가지고 절대 빼앗기지 않지만 불신자들은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을 다 빼앗깁니다. 

    실성하였음이니라

    38   가뭄이 물 위에 내리어 그것을 말리리니 이는 그 땅이 조각한 신상의 땅이요 그들은 무서운 것을 보고 실성하였음이니라

     

    이 부분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629쪽). 

    여기 "가뭄"이란 것은 수원(水原)이 마를 것을 의미한다. 과연 이 예언과 같이 바사 왕 고레스가 바벨론에 와서 그 성 안으로 흐르는 큰 강수를 다른 데로 돌려 흘러 빠지도록 하였다. 그 결과로 바벨론 성안의 시민들은 물이 없으므로 큰 곤란을 당했던 것이다(Calvin). "그 땅이 조각한 신상의 땅이요" 이 말씀은 또다시 바벨론이 당하는 멸망이 그 우상 숭배의 죄악 때문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땅이 심판을 당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조각한 신상"을 섬기기 때문입니다. 조각한 신상을 섬긴다는 말은 사람이 자기가 만든 것을 섬기고 의지한다는 뜻입니다. 지금도 사람들은 사람이 고안한 여러 가지 안전 보장을 약속하는 것들을 의지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길까 두려워합니다. "그들은 무서운 것을 보고 실성하였음이라" 이 말은 원어를 그대로 직역하자면, "그리고 두려움 안에서 그들은 자랑할 것이다"입니다. 여기서 자랑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자랑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개역한글은 "그들은 우상에 미쳤음이니라"라고 의역해 놓았습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의 뜻은 그들이 우상으로 제 정신이 아닌 상태라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바로 알고 섬길 때 제 정신으로 살 수 있습니다. 다른 것을 섬기는 것은 다 제 정신이 아닌 삶입니다. 다른 것에 미쳐있는 삶인 것입니다. 만약 스스로 제 정신이 아닌 것 같다면 얼른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합니다. 

    거기에 사는 사람이 없게 하며

    39   그러므로 사막의 들짐승이 승냥이와 함께 거기에 살겠고 타조도 그 가운데에 살 것이요 영원히 주민이 없으며 대대에 살 자가 없으리라
    40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성읍들을 뒤엎었듯이 거기에 사는 사람이 없게 하며 그 가운데에 머물러 사는 사람이 아무도 없게 하시리라

     

    바벨론이 아주 패망해서 거기에 사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문자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화려했던 도시와 궁전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사람이 살지 않는 황무지가 되었습니다. 

    내가 즉시 그들을 거기에서 쫓아내고

    41   보라 한 민족이 북쪽에서 오고 큰 나라와 여러 왕이 충동을 받아 땅 끝에서 일어나리니
    42   그들은 활과 투창을 가진 자라 잔인하여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며 그들의 목소리는 바다가 설레임 같도다 딸 바벨론아 그들이 말을 타고 무사 같이 각기 네 앞에서 대열을 갖추었도다
    43   바벨론의 왕이 그 소문을 듣고 손이 약하여지며 고통에 사로잡혀 해산하는 여인처럼 진통하는도다
    44   보라 사자가 요단의 깊은 숲에서 나타나듯이 그가 와서 견고한 처소를 칠 것이라 내가 즉시 그들을 거기에서 쫓아내고 택한 자를 내가 그 자리에 세우리니 나와 같은 자 누구며 출두하라고 나에게 명령할 자가 누구며 내 앞에 설 목자가 누구냐

     

    이스라엘이 심판을 당할 때에도 북쪽에서 심판이 임했습니다. 바벨론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민족이 북쪽에서 와서 바벨론을 칠 것입니다(41-42절). 그들은 "잔인하여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는 자들입니다. 꼭 바벨론과 같은 들입니다. 바벨론은 자기가 행한 대로 돌려 받게 됩니다. 손이 약해지고 해산하는 여인처럼 고통에 사로잡혀서 진통하게 됩니다(43절). 이것도 그들이 다른 나라에게 행했던 대로 돌려 받는 것입니다. 사자가 요단 깊은 숲에 나타나듯이 바벨론은 갑자기 공격을 당할 것입니다. 이 일도 바벨론이 예루살렘에 행한 대로 돌려 받는 것입니다(5:6). 44절에서 "택한 자"는 고레스 왕을 가리킵니다. 50장 44절은 49장 19절과 똑같습니다. 49장 19절은 에돔이 받을 벌을 말씀하는 구절입니다. 에돔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서 멸망 당했습니다. 그리고 여기는 바벨론이 똑같이 망한다고 합니다. 이 두 구절이 똑같은 것 안에는 놀라운 영적인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택한 자를 내가 그 자리에 세우리니

     

    에돔은 사람의 육적인 측면을 상징합니다. 육적인 측면 안에는 우리 몸, 우리 육체도 포함됩니다. 우리 육체는 요단의 깊은 숲에서 나오는 사자 같이 죽음을 맞이합니다. 죽음이 육체에 갑자기 엄습하는 것입니다. 이제 바벨론에도 이 말씀이 그대로 쓰였습니다. 바벨론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세력을 상징합니다. 죄와 사망 세력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부터가 중요합니다, 우리 육체가 죄 때문에 죽을 때 죄도 같이 죽습니다. 에돔이 상징하는 우리 육체가 죽음을 맞이할 때 우리 안에 있는 죄도 같이 죽는다는 것입니다. 죄가 우리 육체를 죽이는데 그 때 죄도 죽습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설명하자면, 우리 육체가 죽을 때, 우리의 성화는 완성됩니다.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죄와 죄성이 다 죽는 것입니다. 

     

    그렇게 다 죽은 다음에 그 자리, 죄가 왕으로 주장했던 그 자리에 "택한 자"를 하나님께서 세우십니다. 그 택한 자는 죽음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죄가 왕으로 군림했던 자리에 오셔서 왕으로 다스리십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 오셔서 다스리는 자를 그 누구도 빼앗거나 해할 수 없습니다. "나와 같은 자 누구며 출두하라고 나에게 명령할 자가 누구며 내 앞에 설 목자가 누구냐" 이 말씀이 그런 뜻입니다. 우리를 다스리시고 인도하시는 예수님에게 명령할 자, 또는 예수님을 이끌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완벽하게 안전합니다. 

     

    우리는 이미 거듭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에 대해서 죽었고 의에 대해서 살았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예수님께서 이끄시는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아직 죄성이 조금 남아 있지만 그것도 우리가 죽을 때 완전히 없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거듭났기 때문에 죽음의 공격에도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택하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안에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죽음은 그 예수님에게 명령할 수도 그 앞에 설 수도 없습니다. 단지 우리의 죄만 죽일 따름입니다. 우리는 이런 놀라운 은혜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사람들입니다. 할렐루야! 예레미야서에서 에돔에게 대한 심판 메시지가 똑같이 바벨론에게 기록된 것에는 이런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바벨론에 대한 여호와의 계획

    45   그런즉 바벨론에 대한 여호와의 계획과 갈대아 사람의 땅에 대하여 품은 여호와의 생각을 들으라 양 떼의 어린 것들을 그들이 반드시 끌어 가고 그들의 초장을 황폐하게 하리니
    46   바벨론이 약탈 당하는 소리에 땅이 진동하며 그 부르짖음이 나라들 가운데에 들리리라 하시도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에 대해서 계획과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다(45절). "양 떼의 어린 것들을 그들이 반드시 끌어 가고" 이 구절은 49장 20절에 똑같이 나옵니다. 이 말씀은 "양떼의 어린 것들이 그들을 반드시 끌어가고"라고 해석됩니다. 즉, 양떼의 어린 것들 같은 약한 세력도 능히 바벨론을 견제(牽制)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630쪽).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바벨론을 하나님께서 친히 심판하시는 만큼 양떼의 어린 것들이라도 그 일을 쉽게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 자랑하지 못하게 하십니다(고전 1:29). 그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 약한 것들, 천한 것들, 멸시 받는 것들을 택하셔서 있는 것들을 폐하십니다(고전 1:27-29). 바벨론 같은 강한 세력이 가장 약한 것들에 의해서 무너지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린 양으로 잡히시고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가장 강하신 분이 가장 약한 존재가 되셨습니다. 그렇게 하셔서 이루신 일은 놀랍습니다. 세상에서 그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죄와 사망 세력을 이기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죄와 사망 세력은 약탈을 당했습니다(46절).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죄 아래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을 건지시고 계십니다. 음부의 문이 교회의 공격을 막지 못하고 있습니다. 바벨론은 지금 이 순간에도 약탈을 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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