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민수기 27장 12-23절 | 모세가 약속의 땅(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두 가지 이유

2023. 5. 13. 10:03성서유니온 매일성경/민수기

목차


    민수기 27:12-23

    찬송가 549장 내 주여 뜻대로


    아바림 산에서 약속의 땅을 바라보라고 하심

    슬로브핫의 딸들이 나아와서 아버지의 기업을 잇도록 해 달라는 청원이 마무리된 후에(민 27:1-11)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죽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모세에게 아바림 산에 올라가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땅을 바라보라고 하십니다(12절). 약속에 땅에 들어가지는 못하지만 그 땅을 바라보게는 하시는 것입니다. 

    모세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

    반석을 치는 것은 한 번으로 족함

    모세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는 신 광야에서 회중이 분쟁할 때에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했기 때문입니다(14절). 하나님의 거룩함을 그들의 목전에 나타내지 않았다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반석에게 말하라는 것인데 모세는 반석을 지팡이로 두 번이나 쳤습니다. 반석을 치는 것은 출애굽기 17장에 나오는 장면인데 그 때 반석 위에 하나님께서 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서신 반석을 쳐서 물을 냈습니다. 이것은 자기 백성을 위해서 고난 당하시는 하나님을 상징합니다. 그렇게 해서 반석에는 큰 틈이 생겼습니다. 

     

    출애굽기 17장 5절과 6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 앞을 지나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나일 강을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6   내가 호렙 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5절에서 나일강을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고 합니다. 지팡이를 지칭하는데 나일강을 치던(נָכָה) 지팡이라고 합니다. 나일강을 심판해서 피로 만들었던 그 지팡이로 반석을 치라는 것입니다. 의미심장한 표현입니다. 6절에 나오는 반석은 원어로 추르(צוּר)라고 합니다. 이 반석 위에 하나님께서 서시고 나일강을 피로 만들었던 그 지팡이로 반석을 치라 그러면 반석에서 생명을 상징하는 물이 나온다고 하셨습니다.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두 가지 이유

    추르에서 셀라로

    민수기 20장에서는 반석이라는 말이 달라집니다. 민수기 20장 8절입니다. 

     

    8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이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게 할지니라

     

    "너희는 반석(סֶלַע)에게 명령하여" 이렇게 나오는데 이 말은 위에 나오는 추르(צוּר)와는 다른 말입니다. 이 말 셀라(סֶלַע)의 뜻은 반석의 갈라진 틈을 뜻합니다. 출애굽기 17장의 사건에서 심판의 도구가 되었던 지팡이의 권능으로 반석이 갈라졌고 그 반석에서 물이 많이 나와서 백성들이 물을 먹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그 앞에 서셔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백성에게 생명을 상징하는 물을 주셨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반석에는 틈이 생겼습니다. 이제 모세는 그 틈에 말하여 물을 내라고 하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러지 않고 반석을 쳤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단번의 고난

    모세가 반석을 쳐서 물을 낸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상징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은 영단번의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고난으로 물과 피를 쏟으시고 택한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일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속한 일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한 번 더 반석을 두 번 이나 치므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백성 가운데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그 말씀을 거역한 것으로서 옛 세대에 속한 일을 행한 것입니다. 옛 사람은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것 또한 상징으로 하나님께서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모세는 물론 지금 하나님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약속의 땅에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하나님과 함께 안식을 누리고 있을 것입니다. 모세가 천국에 못 갔다는 말이 아닙니다. 상징으로 우리에게 교훈을 주시기 위해서 이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약속의 땅에는 여호수아가 인도해 들여야 함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약속의 땅에 들이는 사람은 율법을 수여 받은 모세가 아니라 구원자라는 이름의 여호수아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출애굽을 이룬 사람입니다. 즉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이끌어 내어 하나님을 향하도록 한 사람입니다. 그렇게 하고 여호수아가 백성들을 약속의 땅 안으로 이끌어 들입니다.

    율법과 그리스도

    이것은 율법의 역할과도 연관됩니다. 사람이 죄를 깨닫게 하는 것이 율법의 역할입니다. 사람은 율법을 보면서 자기 죄를 깨닫고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을까 구원의 길을 모색합니다. 그렇게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예수님을 의지해서 영생을 얻습니다. 여호수아라는 이름은 호세아라고도 하고 헬라어로 하면 예수아가 됩니다. 구약에 등장하는 예수라는 이름이 바로 여호수아인 것입니다. 모세가 죄와 사망의 세력을 상장하는 애굽에서 건져내고 여호수아가 이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 들이는 것은 이렇게 심도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여호수아에게 안수함

    본문에 여호수아는 모세의 역할을 감당하여 엘르아살 앞에 세워집니다. 여호수아가 선발된 기준은 "그 안에 영이 머무는 자(18절)"이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그를 데려다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안수합니다. 이 안수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권위와 능력이 승계된다는 의미입니다. 똑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의미로 목사를 세울 때 안수식을 거행하는 것입니다.  

    소망이 넘치는 삶

    모세는 옛 시대에 속한 사람으로서 약속의 땅을 바라보고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는 못합니다. 이것은 또한 우리 삶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줍니다. 우리 삶은 약속의 땅을 바라보는 삶입니다. 이 땅에 임한 천국을 누리는 삶을 살지만 극치에 다다른 천국은 바라보고 소망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천국이 극치에 이를 것인데 그 때까지는 바라보며 사는 삶을 삽니다. 이것이 믿음 소망 사랑 중에서 소망의 역할입니다. 우리는 이런 소망 가운데 사는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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