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민수기 25장 1-18절 | 모압 여인과의 음행, 속임수와 문화, 비느하스와 예수 그리스도

2023. 5. 9. 08:51성서유니온 매일성경/민수기

목차

 

민수기 25:1-18

찬송가 286장 주 예수님 내 맘에 오사


싯딤의 음행사건에 연루된 자들

모압 왕 발락과 거짓 선지자 발람의 이야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음행으로 이어집니다. 이 사건의 등장하는 단어들을 잘 보면 이 사건이 발락과 발람의 이야기와 이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은 "모압 여자들(1절)"입니다. 이로써 모압이 이 사건에 연루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압 왕 발락이 또 무슨 계략을 꾸몄다는 뜻입니다. 

모압 왕 발락과 미디안 술사 발람

뒤에 보면 미디안의 한 여인이 등장합니다(6절). 그리고 하나님께서 미디안인들을 대적하여 그들을 치라고 명령하십니다(17절). 이것을 보면 이 사건에 미디안도 연루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앞에서 발락은 미디안 장로들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민 22:4). 그 결과 발람을 저주하러 보낸 것입니다. 이렇게 모압 왕 발락과 술사인 발람의 그림자가 이 사건에 짙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우상숭배와 음행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속의 땅을 앞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모압 여자들과 음행 하기를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우상숭배와 연결된 음행입니다. 음행이 먼저인지 우상숭배가 먼저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다만 성경은 우상숭배를 가리켜서 음행의 죄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이 다른 신에게 절하는 것이 마치 부부사이의 언약을 깨뜨리고 다른 사람과 음행 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실제로 고대 근동에서 행해지는 우상숭배에는 음행의 요소가 가득했습니다. 신전에 있는 여자나 남자와의 음행이 그 신에게 제사하는 과정 안에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방 문화의 정점인 우상숭배

이것은 큰 위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생활밖에는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즉 문화생활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신전이라는 건물과 그 건물에서 행해지는 형형색색의 의식이 어떤 고등한 문화로 비쳤을 것입니다. 아, 이 사람들은 이렇게 하면서 즐기는구나, 이 신은 이렇게 하는 것에 복을 내리는 신이구나, 이런 충격이 그들에게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경계하시면서 우상을 다 멸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역사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 안에 우상숭배가 퍼지게 되고 결국 우상숭배 때문에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가는 징계를 받게 됩니다. 

문화의 유혹

이 사건을 보면서 이스라엘이 계속 잘못만 하는구나 이렇게 생각할 것이 아닙니다. 세상이 문화라는 것으로 유혹해 오는 것이 이렇게 강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특히 이 문화는 지도자들에게 먼저 퍼지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제사장 비느하스에게 죽은 사람은 시므온 지파의 지도자적 인물이었습니다. 거기에 그가 데리고 온 여인은 미디안의 유력한 집의 딸이었습니다. 이것이 우상숭배가 문화라는 옷을 입고 침투해 들어올 때 일어나는 일입니다.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진노로 그들을 죽였습니다(7절). 

 

모압 여인과의 음행, 속임수와 문화, 비느하스와 예수 그리스도

모든 좋은 것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

어떤 것이 교회 안에 들어온 우상숭배인지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아닌 것에서 좋은 것을 기대하는 것은 우상숭배입니다. 모든 좋은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나옵니다. 어느 누구도 모든 선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목사님이나 장로님이나 교회 건물이나 교회 재정이나 교회의 전통이나 신학이나 제도 등등 그 어느 것도 그 자리를 대신해서는 안 됩니다. 성도가 교역자를 존중하는 것은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기 때문입니다. 거기에서 넘어서서 우리 목사님 대단하다 하면서 내가 못 하는 것을 저 목사님은 행하니 대단하신 분 아니냐 하는 것도 주의해야 합니다. 목사님이 대단해 보인다면 거기에서 예수님을 닮은 모습을 보고 예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성도는 이런 것들을 항상 주의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교역자를 존중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너무 존중하지 않는 것도 문제입니다. 그것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존중하지 않는 것입니다. 모든 것에 있어서 기준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고 존중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속임수에 주의해야

18절에 보면 "그들이 속임수로 너희를 대적하되"라고 나옵니다. 아무것도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할 수 없습니다. 조심해야 할 것은 속임수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스스로 속아서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비느하스와 평화의 언약

하나님의 백성이 이렇게 속임수에 빠졌을 때 이들을 건져내는 지도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바로 비느하스입니다.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죄를 처단함으로 하나님 백성의 남은 자들을 건져냈습니다(11절). 제사장은 이렇게 죄를 처단하여 속죄하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13절). 하나님은 비느하스에게 평화의 언약을 주십니다(12절). 이 평화의 언약은 하나님의 진노가 쉬게 한 결과로 받은 언약입니다. 죄가 더 이상 퍼지지 않게 하여 산 자를 살리는 언약입니다.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하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

이러한 일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를 처단하시되 스스로가 죄가 되셔서 모든 형벌을 다 받으심으로 처단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셔서 하나님의 진노가 온 백성에게 내리는 것을 막으셨습니다. 하나님과 백성을 화목하게 하셨습니다(골 1:20).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오늘도 평안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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