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마태복음 17장 14-27절 |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반 세겔과 사랑

2023. 3. 6. 07:36성서유니온 매일성경/마태복음

목차


    마태복음 17:14-27

    찬송가 374장, 나의 믿음 약할 때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

    예수님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과 더불어 산에서 내려오셔서 무리에게 이르렀습니다(14절). 그러자 한 사람이 예수님께 나아와서 간질병에 걸린 자기 아들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간청합니다. 간청하면서 제자들은 그를 고치지 못하였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를 탄식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대와 함께 계실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하신 탄식입니다. 앞선 변화산 사건에서 예수님께서는 모세와 엘리야와 더불어 별세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즉 이 땅에 계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긍휼이 담긴 탄식

    "내가 얼마나 오래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인가?"라는 예수님의 탄식 안에는 긍휼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본격적인 사역을 시작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함께 계신지가 3년이 다 되어갑니다. 3년 동안 수많은 병자들을 고치셨는데도 아직 성치 못한 사람들이 많이 남아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3년 동안이나 온 동네를 돌아다니시면서 사역하셨는데도 아직 성치 못한 사람이 남아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백성들의 믿음 없음과 패역 때문입니다. 온 이스라엘이 일심으로 예수님을 믿었더라면 온 나라에 성치 못한 사람이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떠나가시는 것이 맞음

    이로써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시는 것이 답이 아님이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옳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누구신지와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이 어떤 의미인지를 구약성경을 깨닫게 하심으로 자세히 가르치셨습니다(눅 24:44-29). 가르치셔서 그들을 증인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렇게 하시고 성령님을 보내주셨습니다. 

    교회를 세우시고 떠나실 것임

    성령께서 오셔서 각 사람에게 임하여 사람의 속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예수님과 하나로 묶으시고 그런 사람들이 교회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뜻하신 것이고 구약성경에 이미 기록된 것입니다(눅 24:47; 욜 2:23). 예수님은 그 일을 이루시기 위해서 이 땅을 떠나가실 것인데 땅에는 아직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이 계속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것에 대해서 긍휼의 마음으로 탄식하셨습니다. 그러시고는 귀신을 꾸짖으심으로 귀신을 쫓아내시고 아이를 온전하게 하셨습니다. 

    믿음이 작기 때문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아와서 어찌하여 자기들은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는가 여쭤보았습니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은 너희 믿음이 작기 때문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너희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겨자씨는 굉장히 작습니다. 얼마나 작은지 좁쌀보다 훨씬 작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작은 씨앗 크기만큼의 믿음이 있으면 못할 것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믿는 자에게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님

    우리는 이 말씀을 거꾸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믿음이 있으면 내가 능치 못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가 아닙니다. 내가 행할 수 있고 없고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 말씀에서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믿음은 그 믿는 대상을 바르게 아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누구신가와 나는 누구인가, 내가 지금 하는 일은 어떤 일이고 하나님은 무엇을 원하시는가 이런 앎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알지 못하는 만큼만 믿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꾸 의심이 생깁니다. 이것은 곧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의지하는 믿음

    못할 것이 없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못할 것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으로 어떤 일을 이룬다 말은 자기가 한다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이 그 일을 해주신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의 대상이 원치 않는 것은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하나님을 바르게 의지하지 않은 것이 분명합니다. 마가복음에 보면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고 하십니다(막 9"29). 믿음이 있다는 것과 기도한다는 것은 같은 의미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을 믿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없으니 기도하는 것입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못하나 하나님은 하실 수 있으십니다, 이렇게 행하는 것이지 믿음이 있으면 "내가" 다 할 수 있다, 이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깨닫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수난 예고를 하신 이유

    예수님께서는 갈릴리에 모였을 때에 제자들에게 장차 일어날 일을 말씀하셨습니다(22-23절). 그 말씀을 듣고 제자들은 심히 근심했습니다. 아직 부활을 경험하기 전이기 때문에 당장 예수님께서 죽임을 당한다는 말씀부터가 근심거리였습니다. 제자들이 근심했다는 것은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께서는 깨닫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수난예고를 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미리 말씀해 놓으셔야 제자들이 비로소 나중에 깨닫고 믿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이 모든 것을 아시고 또 이루시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나아가신다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이기시기 위해서 죽음으로 들어가시는 것이지 그것을 피할 능력이 없으셔서 어쩔 수 없이 죽으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요 10:18). 

    반 세겔

    이어서 가버나움에서 반 세겔을 내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사건은 마태만 기록한 사건입니다. 마태가 세리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기 나오는 반 세겔은 성전세입니다. 반 세겔은 은 11.36g 정도 되므로 데나리온(은 3.9g)으로 환산하면 4 데나리온 정도 됩니다. 4 데나리온은 장정이 4일 동안 노동한 대가입니다. 지금 가치로 환산하면 30만 원 정도 되는 상당한 돈입니다. 이 성전세는 가난한 자나 부자나 할 것 없이 동일하게 거두었습니다.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반 세겔이 성전세인 것을 생각한다면 왜 예수님께서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고 하셨는지 이해가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경배 받으셔야 하는 분이 성전세를 내시는 역설적 상황이 생긴 것입니다. 이 상황에서 예수님께서는 원칙을 따지지 않으시고 덕으로 행동하십니다.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성전세를 내시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는 정함이 있습니다. 정해진 대로 따르는 것이 의입니다. 의를 따른다면 예수님은 성전세를 내시면 안 되었습니다. 이것은 돈에 손해를 보고 안 보고의 차원이 아닙니다.

    상황에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의로우신 분으로서 연약한 인간의 차원을 감안하셨습니다. 이것 또한 의입니다. 예수님께 반 세겔을 거둔 것이 얼마나 황당한 일인지는 나중에 재림 때 예수님께서 영광의 왕으로 오실 때 더욱 확실히 드러날 것입니다. 당시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기도 전이기 때문에 당시 상황에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반 세겔을 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보여주시는 방식으로

    반 세겔을 내실 때 독특한 방법으로 내셨습니다. 그 방법은 초자연적인 방법입니다. 바다에 수많은 물고기 중에서 한 세겔의 은을 물고 있는 물고기를 잡아 올려 그것으로 성전세를 내신 것입니다. 이 방법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보여주는 방법입니다. 성전세를 내실 분이 아니라 성전에서 경배받으시기 합당하신 온 우주를 주관하시는 분이심을 드러내시면서 성전세를 내셨습니다. 예수님은 그토록 당시 사람들을 위하셨습니다.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사랑으로 행하셨습니다.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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