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마태복음 16장 21-28절 |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의 의미

2023. 3. 4. 07:38성서유니온 매일성경/마태복음

목차


    마태복음 16:21-28

    찬송가 341장, 십자가를 내가 지고


    내 교회를 세우리라

    예수님께서는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내 교회"를 세울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내 교회(ἐκκλησία)라는 말은 예수님을 따르는 회중이라는 말입니다. 에클레시아는 당시에 중요한 말로 쓰였습니다. 이 말은 헬라시대 민주주의 정치를 이야기할 때 쓰인 데모스(δῆμος)와 같이 쓰였습니다. 데모스는 하나의 법 아래에서 공적인 의견을 전달하는 회중을 뜻합니다. 이 말과 에클레시아는 동의처럼 쓰인 것입니다(박영호, 에클레시아). 이렇게 본다면 예수님께서 내 교회를 세울 것이라 하신 말씀은 당시 사회 체계의 중대한 변화가 일어날 것을 함의합니다. 정치적 의견을 내는 사람들 중에서 예수님의 사람들이 공적으로 생기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을 연결하고 음부의 문을 부수는 기관

    이 말은 교회가 정치적 의견을 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영적 세계가 물리적 세계 안으로 들어왔다는 말입니다. 하늘과 땅을 연결하고 음부의 문을 부수는 공적인 기관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그 공적인 기관은 영적 세계와 관련이 됩니다. 영적 세계와 연관이 있으면서도 사람들의 눈에 보이게 이 땅에 있습니다. 이 땅에 있으면서 한 목소리를 냅니다. 그 목소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목소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공적으로 활동하는 예수의 사람들

    교회는 사적 공동체가 아닙니다. 공적인 공동체입니다. 공공에 영향을 미치는 기관입니다. 공공에 어떤 영향을 미치냐면 정치적 목소리를 내면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셨으면 행하셨을 일을 하면서 영향을 미칩니다. 그것을 사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공적으로 합니다. 공공 안에 예수의 사람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땅의 일을 영적으로 함

    그런데 이 일들은 이 땅의 일이면서 동시에 영적인 일입니다. 교회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립니다(19절). 이렇게 땅과 하늘을 연결합니다. 땅에 하늘을 대표하는 기관이 생긴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내 교회"라는 말의 뜻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목소리를 내고 예수님의 행사를 하면서 땅에 하늘이 임하게 합니다. 그렇게 해서 땅을 복되게 합니다. 하늘의 일 뿐만 아니라 땅의 일에서도 예수님의 뜻이 이뤄지게 됩니다. 땅 위에 예수님의 뜻대로 공적인 일을 수행하는 교회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오늘 본문은 교회가 이 일을 어떻게 수행하는가를 가르쳐줍니다. 먼저는 예수님께서 음부의 권세를 파하셨습니다(18절). 음부의 문을 부수시고 사망의 그늘에 앉은 사람들을 구원해 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로 사람들을 죄와 사망 권세에서 해방시키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을 천국 안으로 들이셨습니다.

    하나님의 일

    이 일은 하나님께서 뜻하신 일이었습니다(23절). 죄로 물든 우주만물을 멸하시지 않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로 씻으셔서 존재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골 1:20). 예수님께서 고난 받으시고 죽으심으로 사망의 저 깊은 구덩이 맨 아래까지 점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심으로 저 높은 하늘 위도 포괄하셨습니다. 그렇게 온 우주를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셨습니다(엡 1:10, ἀνακεφαλαιόω). 교회가 땅에 있으면서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일은 먼저 그 일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야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예수님 가시는 길에 끼어드는 베드로

    하나님의 이런 깊으신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고난을 받으시고 죽임을 당하시고 제 삼일에 살아나실 것이었습니다(21절). 그런데 베드로가 그러한 예수님의 말씀에 격하게 반응합니다. 본문에 보면 베드로가 나아와서 예수님을 붙듭니다. 붙들었다(προσλαμβάνω)는 말은 예수님께서 가시는 길에 끼어들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시는 길에 끼어들어서 자기 뜻을 관철하겠다는 태도로 예수님을 붙든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호하려고 함

    이어서 항변하였다(ἐπιτιμάω)고 하는데 이 말은 문자적으로 꾸짖었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어떤 잘못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미리 꾸짖어 경고한다는 뜻입니다. 마치 아이가 위험한 일을 해서 잘못될 것 같을 때 미리 꾸짖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 마라, 또는 거기로 가지 마라 이렇게 경고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런 위험에 예수님이 처하지 않을 거라고 하면서 예수님께서 가시는 길에 끼어들었습니다. 자기가 나서서 예수님의 길을 막았습니다. 

    사탄과 같은 행동

    이렇게 붙들어서 끼어드는 베드로를 예수님께서는 강하게 질책하십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이 말씀은 베드로의 인격이 사탄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방금 전에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신 말로 예수님을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면서 믿음을 고백했습니다. 그는 믿는 자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사탄이라 하신 것은 지금 베드로가 하는 행동이 사탄의 것과 같다는 뜻입니다. 

    내 뒤로 물러가라

    하나님께서 행하시려는 일에 끼어들어서 그 일은 지혜롭지 못하다, 하나님은 의롭지 않으시다, 이렇게 사사건건 딴지를 걸고 참소하고 대적하는 사탄과 같은 행동을 베드로가 한 것입니다. 이런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는 그의 사탄적 행동을 지적하시면서 "내 뒤로 물러가라" 하십니다. 이 말씀은 앞으로 끼어들지 말고 내 뒤에서 나를 따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을 보고 따라가야지 예수님의 앞에서 이리저리 자기를 나타내어 끼어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라

    그러시면서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자기를 부인하라(ἀπαρνέομαι)는 말은 자기와 절연하라는 말입니다. 자기를 버리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뜻과 가시는 길이 자기 뜻과 대치되는 상황에서 항상 자기 뜻을 버리고 자기 자신의 의지와 절연하라는 뜻입니다. 자기가 살아있으면서 자기 지혜가 옳다고 주장하는 자세로 있지 말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보고 그대로 따라가라는 것입니다.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의 의미

    자기 십자가를 지라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말씀도 같은 말씀입니다. 십자가는 사형틀입니다. 자기가 십자가에 달려 죽을 것을 항상 기억하라는 뜻입니다. 십자가에 달려 나의 의지, 나의 생각, 나의 뜻, 나의 판단, 나의 정욕 등 나 자신이 죽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보통 자기를 괴롭히는 대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남편이 내 뜻대로 안 되면 남편이 십자가라고 하고 자식이 내 뜻대로 안 되면 자식이 십자가라고 합니다. 말씀을 완전히 거꾸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자기 십자가라고 하는 순간 자기 뜻은 살리고 상대방은 죽이는 것입니다. 자기는 옳은 길을 가려고 하는데 상대방 때문에 자꾸 어렵다 이런 뜻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십자가는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내가 죽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내가 죽고 예수님만 사셔서 그 길로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갈 2:20).

    목숨(ψυχή)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목숨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25절). 목숨이라고 번역된 프쉬케(ψυχή)는 기본적으로 호흡이라는 뜻입니다. 사람의 호흡에는 사람의 영혼이 담겨있습니다. 영혼은 사람의 인격을 나타냅니다. 어떤 것을 애정하거나 원하는 것이 사람의 인격 안에 들어 있습니다. 프쉬케는 이 모든 것을 포괄하는 말입니다.

    자기 스스로 복되려고 하는 일은 자기를 파괴하는 일임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고 하신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자기 목숨을 구원하려고 한다는 말은 자기가 애정하는 것, 자기가 뜻하는 것을 관철시키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살리려 한다는 말입니다. 자기가 살아서 스스로 풍성해지고 스스로 복되려고 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일입니다. 잃는다는 말은 파괴한다(ἀπόλλυμι)는 뜻입니다. 

    자기 목숨의 의미를 발견하는 방법

    반면 예수님을 위해서 자기가 애정하는 것을 내려 놓고 자기 자신을 죽이면 자기를 발견하게(εὑρίσκω) 됩니다. 자기 목숨의 의미를 발견합니다. 자기가 왜 사는지를 알게 됩니다. 자기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것은 싫어하는데 왜 그런지를 알게 됩니다. 자기 존재 목적도 알게 됩니다. 자기를 알고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길밖에는 없습니다. 

    옳은 신앙고백을 한 후에 바로 사탄의 행동을 함

    교회가 예수님을 따라가야 할 때 중요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교회 구성원들이 자기 생각으로 예수님을 붙들어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가로막고 자기 생각을 주장한다면 그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사탄의 회당입니다(계 2:9). 스스로 하나님 백성이라고 하면서 사탄의 행동을 했던 유대인들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심으로 옳은 신앙고백을 했던 베드로도 금방 사탄의 행동을 했습니다. 이것을 유념해야 합니다.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일을 하는 교회

    교회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가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교회는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일을 하는 기관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보고 따라가는 기관입니다. 스스로 옳다고 하는 일에는 좋은 일이 대다수입니다. 어려운 이들을 도와주고 섬기고 여러 가지 활동으로 사회사업을 하는 교회들이 많습니다. 잘하는 일이고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이 일이 예수님보다 앞서서 예수님을 붙들고 끼어드는 일이 되면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고 죽으시고 부활하시려고 오셨습니다. 먹이시고 입히시고 병을 고치시고 하는 모든 일은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가를 보여주는 과정이자 그 열매였습니다. 그러나 그 일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교회는 항상 이것을 유념해야 합니다. 

    사람 수준에서 좋은 일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계속 살아계셔서 자기들과 함께 있는 것이 좋은 일이라고 여겼습니다. 물론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이 일은 사람의 일로 좋은 일입니다. 사람 수준으로 좋은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셨다면 지금까지 살아계셨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 땅에 굶는 사람도 없고 병에 걸려서 죽는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사람의 수준에서 보기에 이것만큼 좋은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함께 계시는 것이고 누구든지 그분께 가면 문제가 즉시 해결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교회의 공적 목소리를 자꾸 이 땅에 복지를 이루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사상체계가 신자들의 생각 안에 은연중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죽음까지도 선을 이루게 하심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훨씬 깊으십니다. 하나님은 죽음까지도 하나님께 굴복하게 하셨습니다. 죽음이 못 오게 하셔서 굴복시키신 것이 아니라 죽음을 통과하셔서 굴복시키셨습니다. 죽음은 하나님께 굴복해서 믿는 자에게 선을 이룹니다. 믿는 자는 죽음을 통과하면서 모든 죄가 정결하게 됩니다. 죽음까지도 선을 위해서 봉사하게 하셨습니다. 죽음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길을 가신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 수준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죽음으로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음

    교회가 이 땅에서 해야 할 일이 바로 이것입니다. 죽음을 당당히 받아들이고 예수님께서 가신 길로 믿음을 가지고 통과하는 것이 바로 교회가 할 일입니다. 죽어도 살 것임을 끊임없이 전하면서 복음으로 사람들의 믿음을 바로 세우는 것이 교회가 할 일입니다. 남을 돕는 일은 복음을 복음 되게 하기 위한 일이지 그것이 교회의 주된 사명이 아닙니다. 예수님 안에 참 생명이 있다는 것을 증언하면서 그 과정에서 구제도 할 수 있는 것이지 구제한다고 다 좋은 교회는 아닙니다. 이것을 유념해야 합니다. 

    목숨의 열매를 판단하시는 이

    우리 각자 각자에게 자기 목숨보다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25절). 그런데 이 목숨의 의미를 어디서 발견할 수 있느냐, 바로 예수님에게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27절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고 하십니다. 각 사람의 행한 것은 그 사람이 가졌던 목숨의 열매입니다. 그런데 그 목숨의 열매를 누가 판단하시는가, 바로 예수님께서 판단하십니다. 그렇다면 내 목숨의 의미는 누가 정하는 것입니까? 바로 예수님께서 정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것을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롬 14:23). 사람 수준에서 자기가 좋아보인다고 해서 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을 의지해서 모든 일에 예수님께 감사해서 행해야 합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믿음으로 하루를 묵묵히 살아감

    예수님께서 왕권을 가지고 오실 때 그 때 우리는 우리 목숨의 의미를 더욱 밝히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려면 끊임없이 자기를 죽이고 예수님의 등을 바라보면서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더 힘차게 따라가야 할 것입니다. 자꾸 자기 생각으로 예수님을 붙들고 항변하지 말고 예수님께서 앞서가시면서 겪으신 죽음과 부활을 바라보면서 묵묵히 하루를 사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특별히 믿음으로 그렇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오늘도 그렇게 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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