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마태복음 20장 17-34절 | 소경 같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고쳐 주시는 예수님

2023. 3. 13. 07:01성서유니온 매일성경/마태복음

목차


    마태복음 20:17-34

    찬송가 82장, 성부의 어린 양이


    십자가 지러 가시는 길과 포도원 품꾼의 비유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십니다. 그 길은 십자가를 지러 가시는 길입니다. 이 말씀 이전에 포도원 품꾼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거기 보면 아침 일찍 들어온 품꾼들은 주인을 원망합니다(눅 15:28 참조). 이들은 약속한 대로 받았지만 고생한 대가를 충분히 받지 못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태도는 당시 유대인들이 가진 태도였습니다. 

    유대인들의 기대대로 되지 않음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오시면 지상에 자기 나라를 중심으로 위대한 제국을 세우리라 기대했습니다. 한 데나리온 이상을 기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모든 민족을 복음으로 복되게 하셔서 구원하시는 것인데 그들은 먼저 된 자로서 독점적 지위를 보장받고 싶어 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포도원은 하나님의 나라요 먼저 온 품꾼들은 유대인들입니다. 

    유대인들의 시기심

    먼저 온 품꾼들은 늦게 온 사람들이 한 데나리온 받은 것을 보고 시기했습니다(롬 11:11). 그런 시기심으로 선한 주인을 악하게 보았습니다. 주인이 주인의 것을 가지고 마음대로 하는 것, 즉 은혜를 풍성하게 베푸는 것도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이것은 당시 유대인들의 마음이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런 마음을 예수님과 가장 가까이 있었던 제자들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에게도 시기심이 있음

    오늘 본문에 보면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이렇게 청원합니다. 여기 나오는 아들들은 야고보와 요한입니다. 그 어머니는 살로메인데 예수님과 친인척 관계라고 보기도 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이 청원은 혈연에 기댄 청원입니다. 옛날에는 나라를 세우고 높은 관직의 일을 가까운 친인척에게 맡기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모든 것이 은혜로 이루어짐

    이 청원을 들은 나머지 열 제자는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하게 여겼습니다(24절). 이것이 바로 당시 유대인들의 마음과 같은 마음입니다. 이들의 생각은 아직 유대인들의 메시아상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랐다는 것으로 하나님 나라에서 독점적 지위를 얻고자 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다(마 19:27)는 말에서도 그런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것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말씀하시면서 포도원 품꾼의 비유를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모든 것이 은혜로 되는 것임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낮아지심으로 

    그 은혜는 하나님의 아들이 낮아지심으로 베풀어지는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가시는 길은 올라가시는 길이 아니요 내려가시는 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고 저 깊은 곳까지 내려가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습니다.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시려고(28절) 가시는 중입니다. 제자들은 이 심오한 진리를 아직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높아지려는 허영심을 가진 제자들을 부드럽게 가르치심

    예수님께서 세 번째 수난 예고를 하신 후에 바로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다(17-19절). 예수님은 굳건한 의지로 십자가를 지러 가시는데 제자들은 높아지기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삼일 만에 살아나신다는 말씀의 뜻이 무엇일까를 깊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것보다 높아지려는 허영심만 마음에 가득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에게 친절하게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27절)"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가르쳐주시고 몸소 그것이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소경 같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고치시는 예수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주님

    소경들을 불쌍히 여기심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길에는 여리고 성이 있습니다. 그 여리고성을 나갈 때 맹인 두 사람이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면서 큰 소리로 소리 질렀습니다. 무리가 꾸짖어 잠잠하라 하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더 크게 소리 질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그들이 원하는 대로 보게 하셨습니다.

    제자들을 기다려 주심

    제자들도 어떤 면에서는 소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가시는 길이 어떤 길인지 못 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그들을 부드럽게 깨우쳐 주십니다. 계속 말씀해 주십니다. 마치 소경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그들을 보게 하심과 같이 부드럽게 다루십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에게 주님은 한없이 너그러우십니다. 불쌍히 여기심으로 고쳐주십니다. 

    우리는 불쌍히 여기시는 주님을 믿고 언제든지 주님께 나아갈 수 있음

    우리는 항상 많은 면에서 못 보고 못 듣습니다. 깨닫지 못합니다. 소경과도 같습니다. 이런 우리를 주님께서는 탓하지 않으시고 부드럽게 깨우쳐 주십니다. 제자들이 십자가와 부활을 경험하고나서야 밝히 깨달은 것처럼 순서상 어떤 일들이 먼저 일어나야 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유있게 우리의 성장을 바라보십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어떤 문제든지 주님께 가지고 나아갈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실 줄을 믿고 나아갈 수 있습니다. 실로 주님은 그렇게 나아오는 자들을 불쌍히 여겨 주시고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주님의 크신 긍휼에 기대어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요. 오늘도 그런 하루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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