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16장 후반부, 하나님께서 유다와 예루살렘에 그들의 죄를 배나 갚으신 이유

2023. 8. 8. 08:11성서유니온 매일성경/예레미야


예레미야 16:14-21

찬송가 552장 아침 해가 돋을 때


심판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끊어지는 것임 

하나님께서는 앞에서 초상집에도 가지 말고 잔치집에도 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16:5, 8). 그 이유는 그 땅 모든 사람들이 다 죽어 나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누구를 슬퍼할 겨를이 없이 시체가 가득할 것이고 신랑의 소리나 신부의 소리가 그 땅에서 끊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16:6, 9). 그렇게 심판을 당하는 이유는 그들의 조상들과 그들이 지은 죄 때문입니다(16:11-12). 그 죄의 결과로 그들은 그 땅에서 죽거나 아니면 그 땅에서 쫓겨나서 다른 나라로 포로로 잡혀가게 될 것입니다(16:13). 이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지 않으시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심판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계속 베풀어주시던 은혜와 사랑이 끊어지는 것이 심판입니다.

쫓겨난 땅에서 돌아올 것을 말씀하심 

이어지는 말씀에서는 쫓겨났던 땅에서 돌아올 것을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보라 날이 이르리니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을 북방 땅과 그 쫓겨났던 모든 나라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리라 내가 그들을 그들의 조상들에게 준 그들의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리라(14-15절)"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땅에서 쫓겨나서 하나님과 단절되었던 그들, 하나님의 은혜에서 끊어졌던 그들을 다시 하나님의 땅으로, 즉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는 땅으로 인도해 들이시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과의 단절은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부터의 단절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죽음은 큰 고통의 죽음입니다. 이런 고통스러운 죽음의 상태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다시 살리셔서 은혜와 사랑을 받는 상태로 회복시키시겠다고 하십니다. 이들에게 포로로부터의 귀환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 미운 물건의 시체로 내 땅을 더럽히며 

그런데 이러한 회복은 먼저 그들의 악과 죄를 배나 갚은 후에 일어나는 회복입니다(18절). 하나님께서는 먼저 어부가 물고기를 낚는 것처럼 포수가 짐승을 사냥하는 것처럼 그들을 찾아내어 심판하시겠다고 하십니다(16절). 그들의 죄는 하나님의 목전에서 숨겨지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다 잡혀서 죽거나 포로로 끌려가게 됩니다(17절). 그렇게 해서 그들의 악과 죄를 배나 갚으실 것입니다. 그들의 죄악은 하나님의 땅, 하나님의 기업을 가증한 것으로 더럽힌 것입니다(18절). 여기서 "그 미운 물건의 시체로 내 땅을 더럽히며"라고 나오는데 여기서 그 미운 물건의 시체는 우상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을 섬길 때에는 철저하게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해야 합니다. 속된 것 중에서도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을 구별해야 합니다. 그렇게 구별해서 절대로 부정한 상태로 하나님께 나아가면 안 됩니다. 그러면 무엇이 거룩한 것이고 또 무엇이 정한 것, 부정한 것일까요? 이것은 생명과 연결됩니다. 죄는 생명을 앗아가므로 죄의 결과는 부정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정한 것 중에서도 가장 부정한 것은 시체입니다. 그 부정한 것에 닿은 사람, 즉 시체에 닿은 사람은 생명을 상징하는 피를 뿌림으로 정하게 할 수 있씁니다. 이렇게 본다면 그 미운 물건의 시체라는 말은 우상이 마치 시체와 같이 부정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므낫세 왕은 그 부정한 것을 하나님의 성전에다가 가져다 놓았습니다. 그것은 레위기에서 하나님께서 철저하게 금하시는 것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촉발하는 행위였습니다. 그에 대한 형벌로 그들은 포로로 잡혀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16장 후반부, 하나님께서 유다와 예루살렘에 그들의 죄를 배나 갚으신 이유

 

그들의 악과 죄를 배나 갚을 것임 

특별히 여기서 "내가 우선 그들의 악과 죄를 배나 갚을 것(18절 상)"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므로 악과 죄에 딱 상응하는 벌을 내리셔야 합니다. 그런데 왜 배나 갚는다고 하셨을까요? 이 말씀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의 죄에 대한 형벌을 십자가에서 받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죄와 악의 값을 다 예수 그리스도께 갚으셨습니다. 즉, 모든 죄와 악의 값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치르셨기 때문에 이들에게 갚으시는 것은 배나 갚는 것이 됩니다. 그러면 왜 그렇게 배나 갚으셨는가 하는 것인데 그 이유는 이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촉발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들이 당하는 형벌은 죄를 지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계시의 도구가 됩니다. 거기에 더해서 이들의 고난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이 어떤 성격의 고난인지를 알려주는 것이 됩니다. 즉 하나님을 대적하고 배반한 하나님의 백성은 이렇게 하나님의 목전에서 추방이 되어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사랑을 받지 못하게 됨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외면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촉발한 그 모든 죄를 대신해서 다 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절규하시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서 끊어진 고통이 얼마나 큰지를 보이셨습니다. 그렇게 하시고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역사로 하자면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하나님의 땅인 가나안으로 귀환한 것과 같은 일입니다. 이렇게 해서 죽는 것이 무엇인지 부활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스라엘 역사로 피부에 와 닿도록 생생하게 알려 주셨습니다. 이런 면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계시의 도구로 쓰임 받았습니다. 그 계시는 이방인을 포함한 온 이스라엘을 위한 계시였습니다. 

이스라엘이 벌을 받는 것과 연결되는 이방인의 구원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들의 악과 죄에 대해서 벌을 받는 것과 연결되는 것이 바로 이방인의 구원입니다. 예레미야는 그것을 하나님께 아룁니다. "여호와 나의 힘, 나의 요새, 환난 날의 피난처시여 민족들이 이 땅 끝에서 주께 이르러 말하기를 우리 조상들이 계승한 바는 허망하고 거짓되고 무익한 것뿐이라 사람이 어찌 신 아닌 것을 자기의 신으로 삼겠나이까 하리이다(19-20절)" 민족들이 이 땅 끝에서 주님께 돌아옵니다. 거짓되고 무익한 우상을 버리고 참되신 하나님께로 돌아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진리를 깨닫고 로마서에서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롬 11:25)"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역사를 주관하시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경륜입니다. 이 일이 언제부터 일어나고 있었냐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갈 때부터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우둔하게 되어 포로로 잡혀가는 것을 보면서 이방인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각 지역에 회당이 세워지고 유대교로 개종하는 이방인들이 많아졌습니다. 나중에 사도 바울은 그 회당을 중심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미 유대교에 익숙한 이방인이 먼저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복음이 이방인에게 편만하게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보라 이번에 그들에게 내 손과 내 능력을 알려서 그들로 내 이름이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21절)" 그렇게 해서 하나님께서는 땅 끝에 있는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인 줄 알리셨습니다. 

하나님의 무한하신 지혜와 선하심 

이러한 은혜로 우리가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신비한 방법으로 복음이 전파되게 하시고 우리는 그 복음을 듣고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무한히 지혜로우신 분이십니다. 또한 무한히 선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오늘도 그러한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