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17장 후반부, 안식일과 예루살렘의 안전 그리고 주일성수

2023. 8. 10. 08:33성서유니온 매일성경/예레미야


예레미야 17:19-27

찬송가 43장 즐겁게 안식할 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안식일을 지킴 

하나님께서는 앞에서 사람을 의지하는 죄를 지적하셨습니다(17:5). 그러시면서 하나님을 의지는 자가 받을 복(17:7)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안식일을 지킵니다. 이어지는 말씀은 안식일에 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예루살렘 모든 문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고 하십니다(19-20절). 하나님께서 특별히 장소를 지정하셨는데 그 장소는 바로 문입니다. 예레미야 7장에서는 성전 문에 서서 말씀을 선포하라(7:2)고 하셨는데 그것처럼 예루살렘 성문에 서서 말씀을 선포하라고 하십니다. 예루살렘 성문에서 말씀을 전하라고 하신 이유는 예레미야가 전해야 하는 말씀이 그 성문을 출입하는 것에 관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불의로 치부하는 것과 안식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스스로 삼가서 안식일에 짐을 지고 예루살렘 문으로 들어오지 말며 안식일에 너희 집에서 짐을 내지 말며 어떤 일이라도 하지 말고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명령함 같이 안식일을 거룩히 할지어다(21-22절)" 안식일에 짐을 지고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오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 안식일 계명에 관한 말씀은 앞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에 대해서 말씀한 후에 사람의 마음이 부패했다는 말씀을 하시고 불의로 치부하는 것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과 이어이집니다. 이들의 죄가 이들의 마음과 제단에 새겨졌는데(17:1)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할 때 이들이 안식일 계명을 어기는 것으로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안식일 계명을 어기고 안식일에 짐을 가지고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와 장사하여 부자가 되었다면 그것이 바로 불의로 치부한 것입니다(17:11).

안식일은 하나님과 사랑의 교제를 누리는 날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명하신 것은 그 날 하루를 거룩하게 하여 하나님을 생각하고 그 은혜에 감사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그 인생을 왜 사는가 그 목적을 하나님의 뜻 안에서 발견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길을 걷게 하기 위함입니다. 6일 동안은 힘써 일하고 제 7일에는 안식함으로 하던 일을 멈추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누리고 감사하며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게 하기 위함입니다. 6일의 일이 제 7일, 안식일에 그 의미가 드러나는데 6일 동안 힘쓴 일로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것으로 일상의 삶이 하나님과 연결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것이 안식일 계명의 의미입니다. 결론적으로 안식일은 하나님과 사랑의 교제를 누리는 날입니다. 특별히 6일 동안의 일을 가지고 그 열매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날입니다.

 

예레미야 17장 후반부, 안식일과 예루살렘의 안전 그리고 주일성수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의 의미 

이렇게 복된 날로 주신 안식일을 그들은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순종하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며 그 목을 곧게 하여 듣지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였느니라(23절)" 이것이 바로 이들이 하나님을 대적했다는 증거입니다. 이들의 죄가 이들의 마음과 제단에 새겨졌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안식일 계명을 지키라고 하십니다(24절). 안식일을 거룩히 하여 어떤 일도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라는 것은 안식일을 하나님께 따로 떼어 놓으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날로, 하나님을 만나는 날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뜻을 생각하는 날로 떼어 놓으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안식일을 지키면 예루살렘 성이 영원히 있을 것이라고 하십니다(25절). 그 성의 안전을 보장해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해야 비로소 번제와 희생과 소제와 유향과 감사제물이 의미가 있습니다(26절). 성전에서 드리는 예배는 삶을 바탕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그들은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음, 즉 죄가 마음에 새겨져 있으면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즉 겉으로만 하나님을 예배한 것입니다. 형식만 갖추어 예만 올린 것입니다. 그 마음은 빠져 있었습니다. 빠져 있는 것뿐만 아니라 대적하는 마음으로 가득하였습니다. 

이 말씀 때문에 안식일을 철저하게 지키려고 하였지만 

"그러나 만일 너희가 나를 순종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거룩되게 아니하여 안식일에 짐을 지고 예루살렘 문으로 들어오면 내가 성문에 불을 놓아 예루살렘 궁전을 삼키게 하리니 그 불이 꺼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할지니라 하시니라(27절)" 그들은 끝까지 안식일 계명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예루살렘은 불탔습니다. 나중에 포로 생활에서 귀환했을 때 이들의 자손들은 안식일을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예레미야의 경고를 무시한 대가를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너무 지나쳤습니다. 안식일에 짐을 가지고 예루살렘 성문으로 출입하지 말라는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 옷 만드는 직공은 안식일이 가까워 오는 저녁에 바늘을 가지고 출타하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옷을 짓는 사람에게 바늘은 생계에 관련된 것이므로 안식일에 짐을 가지고 다니는 것이라 하여 금지한 것입니다. 똑같은 원리로 서기관은 글 쓰는 펜을 가지고 나가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들이 이렇게까지 가르친 것은 일면 이해가 됩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안식일 계명을 지키지 않아서 하나님의 말씀 대로 철저하게 망한 경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하나님께서 안식일 계명을 말씀하신 그 뜻을 헤어리는데는 실패했습니다. 

안식일 계명으로 예수님을 죽이고자 함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이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다고 하여 예수님을 대적하고 죽이고자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외식이라고 지적하셨습니다. 이들은 안식일의 외형은 철저하게 지키고 있었지만 이들의 조상들과 똑같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싫어했습니다. 이들의 죄가 이들의 마음판과 제단에 금강석 끝 철필로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 죄는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인데 이들은 안식일 계명을 빌미로 하나님의 독생자,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 아들을 죽이려고 했고 끝끝내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그 죄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갈 죄입니다(27절 하). 외형적으로는 안식일을 지키고 있었지만 그들의 죄문제는 하나도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안식일과 주일성수 

이 안식일은 구약 시대에는 일곱째 날에 지켰습니다. 그것이 신약 시대에 와서 첫째 날로 바뀌었습니다. 안식 후 첫날로 바뀐 것은 그 날이 바로 부활하신 날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주일을 지키는 것은 이전 사람들이 안식일을 지킨 것과 같으면서도 다릅니다. 같은 면은 그 날을 거룩하게 하여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과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날로 지키는 것입니다. 반면 다른 면은 우리는 그 날을 율법으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부활 안에서 지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이미 거듭난 사람으로서 안식일을 부활을 바라보고 미리 경험하는 날로 지킵니다. 옛날 바리새인들이 지킨 것처럼 재앙을 면하고자 지키는 것이 아니로 생명의 근원에 연결되어 있는 사람으로서 생명을 누리는 날로 지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