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시편 95편 1-11절 | 바벨론과도 같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려면

2023. 12. 27. 20:38성서유니온 매일성경/시편

목차


    시편 95:1-11

    찬송가 93장 예수는 나의 힘이요


    구원 찬양

    시편 95편은 하나님을 향한 찬양으로 시작합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의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외치자(1절)" 무엇을 찬양하는 것일까요? 구원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어떤 구원인지는 94편에 나옵니다.

    찬양의 문맥

    94편에는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노래합니다. 이 심판은 큰 물에 대한 심판입니다. 93편에 큰 물이 소리를 높인다고 나옵니다. 여기서 큰 물은 시편 제 4권의 주제와 연결됩니다. 시편 4권은 예루살렘이 멸망한 후에 포로 상황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 나오는 큰 물은 하나님 나라를 대적하고 하나님 백성을 괴롭히는 바벨론을 가리킵니다. 바벨론은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을 비유하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셔서 그들을 끊으실 것입니다(시 94:23).

    구원과 심판

    믿는 자의 구원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의 심판입니다. 구원과 심판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편에 서 있지는 않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무슨 문제를 발견했을 때 내가 그 문제의 일부인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안에 죄성이 있습니다. 이 죄성이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성향입니다. 우리는 항상 십자가를 의지하여 이것을 죽여야 합니다. 

    모든 신들보다 크신 왕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를 지어 즐거이 그를 노래하자 여호와는 크신 하나님이시요 모든 신들보다 크신 왕이시기 때문이로다(2-3절)" 하나님께서는 모든 신들보다 크신 왕이십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은 그 땅의 부귀영화를 보았습니다. 그들의 막대한 힘과 권력도 보았습니다. 그들의 신 마르둑의 장엄한 신전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하나님 앞에서 아무 것도 아닙니다. 바벨론이 지금 아무리 기세가 좋더라도 그들의 힘, 그들의 부귀영화, 그들의 신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이생의 자랑에 미혹되지 말아야

    우리 안의 죄성은 이생의 자랑으로 우리를 몰아갑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십자가를 우리에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십자가에서 죽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의지해서 다시 하나님께 나아갈 때 우리는 참 구원을 맛볼 수 있습니다. 참된 감사가 회복되고 즐거운 노래가 입에서 흘러나옵니다. 이 기쁨은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입니다. 

    그의 손이 지으셨도다

    "의 깊은 곳이 그의  안에 있으며 산들의 높은 곳도 그의 것이로다 바다도 그의 것이라 그가 만드셨고 육지도 그의 손이 지으셨도다(4-5절)"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모든 것을 표현할 때 저 낮은 곳에서 저 높은 곳까지라고 합니다. 특별히 땅의 깊은 곳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땅의 깊은 곳은 가장 낮은 곳, 즉 무저갱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깊은 심연을 뜻합니다. 산들의 높은 곳은 신들이 거한다고 여겨지는 높은 곳입니다. 저 아래에서부터 저 위까지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바다와 육지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시고 다스리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배할 분은 오직 하나님이심

    바벨론으로 통칭되는 것들이 인간 세상을 다스리는 것 같습니다. 돈이나 권력이 역사를 좌우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선을 자연에 돌리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저 깊은 곳에서 저 높은 곳까지 그리고 저 넓은 바다와 육지를 다 지으시고 다스리시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굽혀 경배할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려야 하는 이유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6절)" 시인은 사람들에게 오라고 합니다. 1절에서도 오라고 했습니다. 1절에서는 노래하고 외치자고 했습니다. 여기서는 굽혀 경배하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고 합니다. 하나님을 진실되게 예배하자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네 가지입니다. 첫째, 여호와께서 하나님 백성들을 대적하는 자들을 심판하시고 그들을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1, 3절). 둘째, 여호와께서 모든 만물을 지으셨고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4-5절).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로 거기에 얹혀 살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셨기 때문입니다(6절). 넷째 하나님께서 우리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르시는 그의 양이기 때문입니다(7절).

    영광을 오직 하나님께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다른 것에 무릎을 꿇지 않습니다. 다른 것이 나를 어쩌지 못함을 알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무릎을 꿇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기르시고 주관하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나를 주관하실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주관하십니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영광을 오직 하나님께만 돌립니다. 

    너희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지어다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가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의 이 돌보시는 이기 때문이라 너희가 오늘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는 므리바에서와 같이 또 광야의 맛사에서 지냈던 과 같이 너희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지어다(7-8절)" 가장 큰 적은 우리 안에 있습니다. 우리 마음이 쉽게 완악해진다는 것이 가장 큰 병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바로 우리 모습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므리바에서 다투고 맛사에서 하나님을 시험했습니다(출 17:1-7). 

    눈으로 보고 몸소 체험했지만

    "그 때에 너희 조상들이 내가 행한 일을 보고서도 나를 시험하고 조사하였도다 내가 사십 년 동안 그 세대로 말미암아 근심하여 이르기를 그들은 마음이 미혹된 백성이라 내 을 알지 못한다 하였도다(9-10절)"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기적을 몸소 체험했습니다. 그들처럼 하나님의 기적을 가까이에서 보고 경험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들은 직접 그것을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을 시험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시험했습니다(출 17:7). 게다가 그들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모세와 다투었습니다(출 17:2). 이것은 우리 시대로 하자면 예수님을 거부하고 믿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다투는 것입니다. 

    마음이 미혹됐기 때문에

    기적을 경험한 그들이 왜 그렇게 했을까요? 바로 마음이 미혹됐기 때문입니다. 애굽에서 하나님 없이 잘 먹고 잘 사는 생활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곧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이 없다는 것은 곧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지 않으신다는 뜻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음이 미혹되면 나타나는 증상이 바로 이것입니다. 잘 되어야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이라,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길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길을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광야를 통과하게 하시는 이유를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광야를 통과하게 하신 이유는 그들을 낮추셔서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줄을 알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신 8:4; 마 4:4). 성령에게 이끌려서 가는 길에는 광야도 있고 굶주림도 있는 것입니다. 즉 고난도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이유

    왜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을까요? 마음이 미혹되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미혹되어서 가나안의 풍습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해도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가르침에 혹해서 바알을 숭배했기 때문입니다. 시인이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을 다시 이야기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우리가 왜 바벨론의 포로 상태에 있는가? 왜 이렇게 비참한 상태에 있는가? 바로 마음이 미혹되어서다. 광야를 지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우리가 그렇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내가 노하여 맹세하기를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도다(11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의 포로 상태에 있으면서 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참된 안식이 없습니다. 그들은 예배드릴 자유를 빼앗겼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뼈아픈 일인지를 몸소 체험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의 안식을 갈망하게 되었습니다. 

     

    매일성경 | 시편 95편 1-11절 | 바벨론과도 같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려면

    하나님의 안식 

    하나님의 안식에 관해서는 히브리서 3장과 4장에서 깊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안식은 창조 때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즉 제칠일에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쉬신 것입니다(히 4:4).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이미 다 이루셨습니다. 믿는 사람은 그것에 참여하는 사람입니다. 

    믿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기에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는 그들이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히 3:19). 그들은 믿지 않았기 때문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히 3:18). 그러면 그들은 무엇을 안 믿었을까요? 바로 복음의 말씀을 믿지 않았습니다(히 4:2). 어느날 사람에게 복음의 말씀이 들려옵니다(히 4:7). 그 때 그 말씀이 그 사람을 하나님 앞에 세웁니다(히 4:12-13). 하나님의 말씀은 검처럼 우리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합니다. 우리 마음이 하나님 앞에 벌거벗은 것처럼 드러나게 됩니다. 그 때 믿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합니다(히 4:14). 

    예수님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다 아십니다. 몸소 체험하셨기 때문입니다(히 4:15).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능히 도우실 수 있으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에서 구원을 얻을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하여 그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고통과 고난을 짊어지시고 그것을 다 이루셨습니다. 완성시키셨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임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는 사람은 앞서 가신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는 사람은 이미 하나님의 안식 안에 있습니다. 

    바벨론과도 같은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들

    히브리서는 이 시의 저자를 다윗이라고 합니다(히 4:7). 다윗의 시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이들에게 큰 울림이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바벨론과도 같은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울림을 줍니다. 우리가 진정 누구를 기뻐하고 노래해야 하는지 알려줍니다. 우리가 진정 누구를 예배해야 하는지 알려줍니다. 우리가 진정 누구를 믿어야 하는지 알려줍니다. 우리가 진정 누구를 바라보고 따라야 하는지 알려줍니다. 우리는 세상을 바라보고 그 길로 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간 사람들입니다. 이생의 자랑에 미혹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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