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열왕기상 12장 1-11절 | 세겜에서의 백성의 불평과 조언을 구하는 르호보암

2023. 10. 3. 18:10성서유니온 매일성경/열왕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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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열왕기상 12:1-11

    찬송가 387장 멀리 멀리 갔더니


    12장의 문맥

    열왕기상 11장에서는 솔로몬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이방신들을 섬겨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진노하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진노하셔서 그의 대적을 일으키셨습니다. 외부의 적으로는 에돔 사람 하닷과 소바사람 르손을 일으키셨고 내부의 적으로는 에브라임 족속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을 일으키셨습니다. 여로보암을 일으키시면서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열 지파를 줄 것이라고 하시고(11:35) 솔로몬의 아들에게는 한 지파를 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11:36). 이 말씀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가 12장 오늘 본문에 이어집니다. 

    세겜

    1절에 보면 르호보암이 세겜에 갔다고 합니다. 세겜은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49km 떨어진 지점에 있는 곳인데 특별히 그리심 산과 에발 산 사이에 있습니다. 그리심 산은 세겜의 남쪽에 에발 산은 세겜의 북쪽에 있습니다. 신명기 27장에 보면 여섯 지파는 그리심 산에 서고 여섯 지파는 에발 산에 서서 열두 가지 저주를 선포하고 모든 백성은 응답하여 "아멘"합니다(신 27:11-26). 여기서 그리심 산은 축복의 산으로 에발 산은 저주의 산으로 등장합니다. 이 말씀은 신명기 28장의 축복과 저주에 관한 말씀으로 이어집니다. 요점은 하나님의 법을 잘 지켜 행하면 복을 받고 그 법을 어겨 하나님을 배반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세겜은 복이냐 저주냐를 가르는 장소입니다. 복을 받을 것인가 저주를 받을 것인가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것인가 아닌가로 결정됩니다. 세겜은 이런 장소인데 르호보암이 세겜으로 간 것은 그곳이 북쪽 지파들을 만나는데 제일 좋은 장소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르호보암은 선택의 기로에 놓입니다. 

     

    매일성경 | 열왕기상 12장 1-11절 | 세겜에서의 백성의 불평과 조언을 구하는 르호보암

    여로보암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은 온 이스라엘이 르호보암을 만난다는 소문을 듣고도 여전히 애굽에 있었습니다(2절). 적극적이지 않은 태도였습니다. 그는 아마도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이 어떻게 되는가 시험해 보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가 나서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약속을 지키시는가 시험해 보고자 한 것입니다. 그렇게 애굽에 있는데 무리가 사람을 보내서 여로보암을 불렀습니다(3절). 그는 무리에게 추대되어서 이스라엘 온 회중의 대표처럼 되었습니다. "여로보암과 이스라엘의 온 회중이 와서 르호보암에게 말하여 이르되(3절 하)" 르호보암을 마주하는 무리는 지도자를 이미 추대한 무리였습니다. 르호보암은 이것을 간과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의 불평은 일리있는 것인가?

    "왕의 아버지가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이제 왕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4절)" 이것이 여로보암과 이스라엘 회중이 말한 내용입니다. 이 내용은 열왕기상 4장 25절과 대치됩니다. "솔로몬이 사는 동안에 유다와 이스라엘이 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각기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평안히 살았더라(왕상 4:25)"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는 이스라엘 영토 전체를 가리킵니다. 단은 최북단에 있고 브엘세바는 최남단에 있습니다. 거기에 평안히 살았다고 합니다. 평안히 살았다(בֶּטח)는 것은 안전하게 살았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평안하고 고요한 중에 걱정없이 살았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그 어떤 외세의 침략을 걱정하지 않고 또한 먹고 살 걱정도 하지 않고 살았다는 뜻입니다. 이런 걱정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는데 있어서 아무런 제약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삶은 우리 신앙인들이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딤전 2:2)" 이스라엘 온 회중은 실제로 솔로몬이 사는 날 동안에 이런 안전을 누렸습니다. 또한 여러 가지 건축사업을 할 때에도 이스라엘 자손은 노예로 삼지 않았습니다(9:22). 이스라엘 자손이 아닌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 중 남아 있는 사람과 그 자손들을 역군으로 삼았습니다(9:20-21).

    솔로몬의 사업들

    이렇게 본다면 백성들의 불평은 그 근거가 빈약했지만 솔로몬 때에 벌인 사업이 크고 많았기 때문에 일면 일리있는 불평이기도 했습니다. 첫째로는 20년 간 진행된 성전 건축과 왕궁 건축이 있었습니다. 역군이 아니고 아무리 감독이어도 20년 간 진행된 공사는 부담이었을 수 있습니다. 둘째로는 예루살렘 성과 하솔과 므깃도와 게셀을 건축한 일입니다(9:15). 이 건축 사업은 방대한 사업이었는데 벧호론(9:17)과 바알랏과 다드몰(9:18), 거기에다가 모든 국고성과 병거성들과 마병의 성들을 건축한 사업입니다. 셋째로는 배들을 만들어서 무역을 한 일입니다(9:26). 이 무역은 히람도 함께 하는 무역이었는데 이 무역사업도 크고 방대한 사업이었습니다(9:27-28). 멀리 떨어진 곳에서 각종 상품을 실어오고 또 다른 곳에 파는 사업이었기 때문에 시간도 많이 걸리고 여러 가지로 위험 부담도 있는 사업입니다. 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사업들을 가리켜서 그 짐이 무겁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것을 가볍게 해달라고 르호보암에게 청원했습니다(4절). 

    조언을 구하는 르호보암

    르호보암은 3일의 말미를 청하고 의논하기 시작했습니다(5절). 르호보암이 먼저 의논한 사람들은 솔로몬의 생전에 그 앞에 모셨던 노인들입니다(6절). 그들은 백성들을 섬기라고 조언합니다.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 만일 오늘 이 백성을 섬기는 자가 되어 그들을 섬기고 좋은 말로 대답하여 이르시면 그들이 영원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 하나(7절)" 이 조언의 요지는 백성들의 마음을 잘 듣고 그 마음을 풀어주라는 것입니다. 백성들이 그동안 얼마나 고생했는지를 잘 듣고 인정해주고 그들을 섬기라는 조언입니다. 만약 르호보암이 백성을 귀하게 여기고 그들의 말을 듣는 마음이 있었으면 이들의 조언대로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르호보암은 반대의 입장을 취합니다. 그가 취한 입장은 함께 자라난 소년들의 조언을 따른 것입니다. "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무거운 멍에를 메게 하였으나 이제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 내 아버지는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였으나 나는 전갈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리라 하소서(11절)" 이 입장은 온 이스라엘의 불평이 이치에 맞지 않다는 입장입니다. 너희가 솔로몬의 치하에서 안전을 누리고 잘 살지 않았느냐, 그런데 지금 불평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 하는 입장입니다. 이것도 일면 일리 있는 말입니다. 르호보암은 두 번째 입장에 서서 백성들에게 대답합니다(14절). 그 장면은 다음 본문에 나옵니다.

    누가 옳고 누가 틀렸는가

    이 일이 일어난 장소는 세겜입니다. 세겜은 축복과 저주 중간에 있는 땅입니다. 그러면 백성들은 축복이고 르호보암은 저주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백성들의 요구에도 일면 일리가 있지만 그들의 요구를 잘 보면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만약 그들이 하나님을 위했다면 솔로몬이 세운 우상을 없애달라고 요구했을 것입니다. 개혁을 요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을 위한 요구를 합니다. 르호보암이 그들의 요구에 적대적으로 답한 것도 일면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강력한 왕권으로 비록 여러 일로 백성들을 바쁘게 했지만 그 어느 때보다 백성들이 잘 살도록 해 준 솔로몬을 부정하는 듯한 발언에 대해서 르호보암은 수긍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르호보암이 잘못해서 나라가 갈라진 것이 아닙니다. 나라가 갈라지는 것은 솔로몬 때에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일입니다. 다만 백성들과 르호보암 모두 세겜에 모여서 하나님의 법도에 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백성들의 입장과 르호보암의 입장 그 어디에도 하나님의 입장은 나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입장은 무엇입니까? "네가 만일 네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이 마음을 온전히 하고 바르게 하여 내 앞에서 행하며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온갖 일에 순종하여 내 법도와 율례를 지키면(9:4)" 이것이 하나님의 입장입니다. 그리심 산과 에발 산 가운데에서 이미 말씀하신 그 입장 즉 "이 율법의 말씀을 실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신 27:26)" 이 입장이 하나님의 입장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 누구도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온 나라가 저주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르호보암이 섬기는 자세를 가졌다면 달라졌을까?

    만약 르호보암이 섬기는 자세로 백성들에게 대답했다면 달라졌을까요? 르호보암이 아버지 솔로몬이 하나님을 사랑할 때 받았던 듣는 마음을 가졌다면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 듣는 마음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사랑하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하나님의 의로 다스리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랬다면 달라졌을 것입니다. 핵심은 정답을 맞추냐 못 맞추냐가 아닙니다. 섬기는 것이 정답이고 그것을 못 맞춰서 나라가 갈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를 섬기신 것은 섬김이 정답이라서가 아니고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셨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답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답입니다. 왜 이것이 답입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법도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대한예수교장로회(합신) 소속 목사입니다.

    현재 자비량으로 군선교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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