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난 운을 다 쓰는 방법

2022. 2. 17. 14:57Think Again

타고난 운?

타고난 운이라고 하니까 이거 왠지 그리스도인으로서 못할 말을 하는 것 같다. 이 글이 기독교인들만을 위한 것은 아니니까 당신이 만약 그리스도인이라면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하는 말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널리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

사람마다 타고난 운이 있다고 한다. 기독교식으로 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분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분량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뜻이다. 

성인으로 자랐다는 것의 의미

사람으로 태어나서 죽지 않고 살아서 성인이 된다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다. 아무것도 없이 적신으로 태어나는데 산다. 신생아는 하루만 방치해도 목숨이 위태로워진다. 이렇게 연약한 존재로 태어났는데 생존에 성공한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아기로 태어나서 방치되지 않았다. 먹이고 재우고 입히는 돌봄을 받았다. 아무 값없이 먹여주고 재워주고 입혀주는 사람이 당신 곁에 있었다. 이것만 해도 대단한 운이고 놀라운 은혜다. 좋은 부모를 만났든지 좋지 않은 부모를 만났든지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은혜다. 

나를 위해 희생된 것들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얼마나 많은 자원이 나를 위해서 쓰였을까? 나는 어제 치킨을 시켜 먹었다. 나와 우리 식구들을 위해 치킨 한 마리가 희생되었다. 맛있는 양념과 튀김옷, 종이 박스, 무절임, 이런 것들의 근본을 따지고 들어가면 다 어떤 생명으로부터 나온 것들이다. 살아 움직이는 닭이 있었고, 튀김옷에 쓰이는 각종 곡식들, 종이 박스를 위한 나무들, 무절임을 위한 생무가 땅에 심겨 있었다. 이런 생명들이 치킨을 먹는 즐거움을 위해 희생되었다.

그런 생명들뿐만이 아니다. 사람이 거기에 시간을 들였다. 사람에게 시간의 가치는 생명의 가치와 같다. 주어진 시간이 끝나는 것이 죽음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생명 같은 시간을 들여서 무엇을 생산한다고 하자. 그 시간은 50년이 채 안 된다. 이런 생명과 같은 소중한 시간이 모여 치킨을 만들었고 나에게 그 치킨이 배달되었다.

이것들이 다 생명들이라고 생각하면 2-3만 원이라는 가격이 너무 싸 보인다. 엄청난 가치의 것들을 단돈 2-3만 원에 누릴 수 있다. 치킨 하나가 그렇다면 성인이 되기까지 내가 값을 다 지불하지 않고 누린 것들의 가치는 어떻게 될까? 나에게 거저 주어진 것들의 가치를 다 합하면 얼마가 될까? 수억? 수천억? 수조? 돈으로 가치를 매길 수 없는 것들이 나를 위해서 사용되었다.

이 모든 것에 부모님의 희생이 그 바탕이 된다. 아버지는 땀흘려 일하고 돈을 벌고 어머니는 그 돈으로 여러 가지 물품을 사고 나를 먹이고 입히고 돌보았다. 그런데 그렇게 사용한 돈은 소비한 가치와 비교할 때 너무 적은 돈이다. 부모님의 희생과 더불어 희생만으로는 잴 수 없는 엄청난 가치가 나를 위해서 사용된 것이다. 

타고난 운을 다 못 쓴다?

잠깐 글 읽기를 멈추고 당신이 얼마나 크고 엄청난 운을 타고 났는지 생각해 보라. 모든 것이 은혜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더 해빙이라는 책을 쓴 이서윤 작가는 타고난 운을 다 쓰는 사람은 몇 사람 안 된다고 하면서 한국 사람 중에서는 운을 다 쓰는 사람이 극히 드물다고 한다. 이미 큰 운을 타고났는데 그 좋은 것을 다 소멸해 버리는 것이다. 

왜 그럴까? 나를 바라보지 않고 타인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은 유독 다른 사람과 경쟁적이다. 그 결과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목표가 되고 이기지 못하면 불행하다고 느낀다. 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가를 깨닫지 못하고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자기를 못난 사람이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운이 소멸되는 과정

그런 상태에서는 내가 받은 은혜에 감사할 수 없다. 내가 가진 것으로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할 수 없다. 세상 모든 가치는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함으로 증대되는데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하지 못하니 나의 가치가 점점 소멸하게 된다.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할 수 있는 것이 내 안에 많지만 그것을 세상에 내놓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주지 못하니 그것은 없는 것이 된다. 운이 있지만 그 운이 움직이지 못한다. 그 사람에게 갇히고 만다. 갇혀버린 운은 그 사람 안에서 정체되고 축소되고 소멸된다.

운을 은혜로 바꿔 읽어도 마찬가지다. 은혜는 점점 확장되고 커지는 특성이 있다. 내가 기분이 좋아서 다른 사람을 기분 좋게 하면 그 기분은 사람을 타고 전해지면서 세상을 밝게 한다.

그런 밝은 기운이 기분 나쁜 사람에게 전해졌다고 해보자. 그 사람은 기분이 나쁘기 때문에 무슨 일이 와도 시큰둥하다. 그렇게 되면 은혜는 그 사람을 통과하지 못하고 그 사람 안에 갇혀서 소멸된다. 밝은 에너지가 거기에서 멈춰 버린다. 전달이 안 되고 소멸한다. 은혜가 소멸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주적인 손해다. 이렇게 온 우주에 손해를 끼치고 앉아 있는 사람에게는 자꾸 손해 되는 일이 찾아온다. 운이 나빠서나 은혜가 없어서가 아니다. 자기에게 주어지는 은혜나 운을 자꾸 없애버리면서 온 우주에 손해를 끼치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다. 

타고난 운을 다 쓰는 방법

내가 타고난 운이 얼마나 큰지를 깨달으라

타고난 운을 다 쓰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그것은 자기가 얼마나 큰 은혜를 받았는지를 깨닫는 것으로 시작한다. 주변을 돌아보자. 건물 안에 있든지 밖에 있든지 누군가 지어 놓은 바닥을 딛고 있을 것이다. 산에서 돌을 파내서 가공하고 그것을 내가 딛고 있는 바닥에 까는 수고를 내가 아닌 누군가가 감당했다. 그 수고를 하느라 수십 명, 어쩌면 수백 명이 고생했다. 그들의 노고로 지금의 나는 쾌적하게 거리를 걸을 수 있고 집 안에 있을 수 있다. 책상도 그렇고 의자도 그렇다. 내가 아까 먹은 한 끼도 그렇다.

밥 한 그릇 안에는 벼를 키우는 노력과 고생, 해와 물과 바람의 작용, 거기에 생명같은 가치를 지닌 사람의 시간이 거기에 들어가 있다. 그런 놀라운 가치가 집약된 결실을 먹은 것이다. 반찬도 각종 요리도 마찬가지다. 요리사의 노하우와 수고, 각종 조리 기구들을 만들기 위한 수고와 노력, 전기가 만들어지기 위한 과정과 노력을 생각해 보라. 그것들이 다 나의 식사 한 끼를 위해서 일했다. 내가 수고하지 않은 수많은 것들이 나를 부드럽게 감싸고 있다. 타고난 운을 다 쓰려면 이것을 먼저 깨달아야 한다.

Agnese Lunecka  님의 사진, 출처:  Pexels

깨달으면 행복해진다

공덕역에 가면 예식장이 하나 있다. 음식이 맛있기로 소문 난 예식장이다. 하루는 거기에 고등어회가 나온 적이 있다. 이런 귀한 것이 있네 생각하면서 접시에 담았다. 자리에 앉아서 고등어회를 먹는데 뇌 안에 바다가 확 펼쳐졌다. 고등어가 입 속에서 통통 튀면서 헤엄치는 것 같았다. 놀라운 경험이었다.

주변 모든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감사하기 시작하면서 경험한 것이다. 고등어회를 시작으로 깐풍기, 양장피, 육회 같은 음식들 안에 깃든 생명과 정성과 노력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너무 감사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음식을 먹는데 황홀함까지 느꼈다. 행복했다. 

감사가 공간을 환하게 밝힌다

가족 중에 코로나 확진자가 생겨서 나와 아이들이 오늘 PCR 검사를 받으러 갔다. 참 추운 날씨였다. 휴대폰으로 먼저 문진표를 작성했다. 둘째 아이 휴대폰으로는 주소 입력이 되지 않아서 안내하는 젊은 분께 물어보았다. 얼마나 친절하게 알려주시던지. 감사했다. 그렇게 보니까 거기에 있는 분들이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지가 보였다. 그렇게 고생하고 있으면서도 친절하게 응대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연신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그랬더니 더 밝은 대답이 돌아왔다. 네, 안녕히 가세요! 친절이 친절을 낳고 감사가 그 공간을 환하게 밝혔다. 은혜가 흘러서 더 큰 은혜가 되었다. 

은혜가 넘치고 있다

이렇게 감사하면서 놀라운 일이 일어나고 있다.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좋아지고 있다. 주변 사람들이 밝아지고 있다. 은혜가 넘치고 있다. 사람들이 쓰는 말로 운이 트이고 있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운을, 은혜를 잘 사용하고 있다. 운이 나를 통과해서 다른 사람에게 밝은 에너지로 흘러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