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4장 후반부, 아브라함이 모든 믿는 자의 조상이 되는 이유

2023. 6. 3. 20:53성서유니온 매일성경/로마서


로마서 4:13-25

찬송가 321장 날 대속하신 예수께


아브라함이 의롭다함을 얻은 일과 그 후손이 받을 상속

로마서 4장 후반부에는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집니다. 잠깐 앞의 내용을 이야기하자면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은 것은 할례를 받기 전입니다(10절). 그렇기 때문에 할례가 의로 여겨지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혈통으로는 할례자의 조상이지만 실상은 모든 믿는 자의 조상입니다.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고 나서 의롭다 함을 얻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할례를 받은 유대인이든지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이든지 모든 믿는 자는 아브라함의 믿음과 같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 것입니다(12절). 이제 13절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이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아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즉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파기된다는 말씀의 뜻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라면 믿음은 헛것이 됩니다. 또한 약속은 파기됩니다(14절). 왜냐하면 율법으로 의롭다함을 얻을 수 있으면 굳이 믿음이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필요 없으니 약속도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καταργέω). 약속이 효력을 발휘하는 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런데 율법으로 의롭다함을 얻을 수 있으면 약속이 무효합니다. 아브라함이 무능하니까 약속이 효력을 발휘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스스로 할 수 있으면 약속을 받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율법에 속한 자들이 아니라 믿음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가 되는 것이 이치에 맞습니다. 

율법이 진노를 이루는 이유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것을 하지 않으니 진노를 이루고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을 어기고 행하니 또한 진노를 이룹니다. 율법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율법을 어기게 되니까 나쁜 것입니다. 사람이 어떤 규칙을 이야기 했는데 그것을 들은 사람이 계속 어긴다면 사람이라도 그 일에 대해서 분노하기 마련입니다. 규칙을 말하지 않았으면 화가 나지 않았을 것을 규칙을 말했기 때문에 분노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율법이 없다면 범법함도 없다는 말은 이런 뜻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율법을 말씀하셨는가 라는 생각을 할 수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 교제하는데 있어서 율법이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인격적 존재는 모든 일에 좋고 싫음이 있기 마련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가르치시기 위해서 어떤 법을 말씀하실 수밖에 없으신 것입니다. 문제는 사람이 죄를 범함으로 하나님께 인정 받을 만한 선은 그 어떤 것도 행할 수 없게 된 데에 있습니다. 법이 문제가 아닙니다(15절). 

 

아브라함이 모든 믿는 자의 조상이 되는 이유

상속자가 되는 것이 은혜에 속하는 이유

상속자가 되는 것은 은혜에 속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풍성하신 은혜로 주시는 것입니다. 아무도 받을 자격이 없지만 주시는 것입니다. 상속자가 되는 것은 은혜로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율법에 속하지 않고 믿음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자격이 없는 자, 즉 일한 것이 없는 자(5-6절)가 받기를 바라면서 믿습니다. 하나님은 그 믿음을 의로 여기시고 그에게 약속하신 것을 베푸십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아브라함처럼 믿는 모든 자는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 아브라함이 받은 그 약속을 동일하게 받는 것입니다(16절).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분이십니다(17절). 즉 아브라함과 사라가 죽은 것 같은 때에 아브라함은 99세, 사라는 89세에 그들에게 아들을 약속하시고 그 다음 해에 이삭을 나게 하신 분이십니다. 아브라함은 자기와 사라를 생각할 때 아무 것도 바랄 수 없었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후손을 바라고 믿었습니다(19-21절).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습니다(22절). 

아브라함의 믿음과 우리의 믿음은 본질적으로 같음

이렇게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을 믿은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같은 믿음입니다. 우리는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17절). 그 하나님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신 이유는 우리가 범죄했기 때문이고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신 것은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해서입니다(25절). 우리에게 없는 죄사함을 있는 것으로 부르신 하나님, 또한 우리에게 없는 의를 있는 것으로 부르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다시 살리심으로 우리를 의롭다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바랄 수 없는 일로서 아브라함이 후손을 바랄 수 없는 것과 같은 성격의 일입니다. 이런 것을 우리는 바라고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의로 여기십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믿는 자의 조상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본질적으로 아브라함의 믿음과 다르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