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마가복음 1장 12-20절 |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신 일과 제자들을 부르신 일, 그리고 복음

2024. 2. 9. 18:52성서유니온 매일성경/마가복음

목차


    마가복음 1:12-20

    찬송가 312장 너 하나님께 이끌리어


    광야로 들어가심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으시므로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으셨습니다. 그런데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자기 백성과 함께 묶이셔서 세례를 받으신 것입니다. 그것처럼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과 묶이신 일이 12절부터 이어지는데 그 일은 바로 광야로 들어가신 일입니다. 

     

    12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13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예수님께서는 성령에게 이끌리셔서 광야로 들어가셨습니다. 이 일은 출애굽기에 나오는 일입니다. 출애굽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건너서 광야로 들어갔습니다. 하나님께서 광야로 그들을 몰아서 인도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넌 일을 가리켜서 그들이 세례를 받은 것이라고 해석합니다(고전 10:1-2). 즉 이스라엘 백성들도 세례를 받고 광야로 들어간 것입니다. 그것처럼 예수님께서도 자기 백성들과 묶이셔서 세례를 받으시고 광야로 들어가셨습니다. 

    광야에서 시험 받으심

    예수님께서는 광야에 들어가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십 년 동안 있었던 것처럼 사십 일 동안 계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시험을 받은 것처럼(신 8:2) 예수님도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지만 승리하셨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패했던 것(민 14:22; 시 106:14; 히 3:8)과 대조됩니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묶이신 것은 그들을 대표해서 죄를 씻으시고(1:9) 또한 그들을 대표해서 광야 시험을 통과하시고 그들을 대표해서 사탄을 이기시기 위함입니다. 

    들짐승과 함께 계심

    마가는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들짐승과 함께 계셨다고 기록합니다. 그런 예수님을 천사들이 수종들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 안에서 세상의 질서가 회복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세상 질서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사탄과 맞서시고 이기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들짐승들에게 가진 권위를 회복시키셨습니다. 

    들짐승에 대한 사람의 권위

    아담은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에게 이름을 주었습니다(창 2:19). 이름을 주었다는 것은 그것들을 불러서 다스렸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질서는 죄로 인해서 파괴되었습니다. 사람이 짐승인 뱀의 말을 듣고 그대로 행한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해서 대다수의 짐승들은 사람의 권위에 더 이상 복종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죄 사함으로 이루어진 회복

    예수님께서는 파괴된 질서를 회복시키셨습니다. 모든 들짐승들이 예수님과 함께 평화롭게 지냈습니다. 예수님의 권위에 복종했습니다. 이러한 회복은 죄 사함으로 이루어진 회복입니다. 앞에 나오는 세례가 죄 사함을 나타냅니다. 죄가 사해지면 어그러졌던 질서도 회복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사야 11장에 예언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사야 11장에 나오는 질서의 회복을 먼저 이루시고 보여주셨습니다. 

     

    6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7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8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9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천사들이 수종 들더라

    천사가 예수님께 수종들었습니다. 천사가 사람에게 수종드는 일은 사람이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을 때 일어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는 사람을 보호하십니다. 이것도 우주의 질서가 회복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영적 존재는 사람을 대적하고 사람 위에서 악영향을 끼치라고 지어진 존재가 아니라 사람을 지키고 보호하라고 지어진 존재입니다(시 91:9-13). 

    요한이 잡힌 후

    14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마가복음은 시간 순으로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시간 순이 아니고 신학적 순서대로 기록되었습니다. "요한이 잡힌 후"라는 말은 시간의 순서를 기록한 말이 아닙니다. 물론 요한이 잡힌 후에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이 시작된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세례 이후 바로 갈릴리 사역을 시작하신 것이 아닙니다. 약 9-10개월의 시간이 흐른 뒤에 갈릴리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그 때는 요한이 이미 잡힌 후였습니다. 마가는 9개월의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냥 뛰어 넘습니다. 신학적 순서를 따랐기 때문입니다. 요한까지는 구약에 속한 사람입니다.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는 시기입니다(눅 16:16). 마가는 그것을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학적 순서

    예수님께서는 온 우주의 질서가 회복된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죄 사함의 세례가 있었고 예수님의 광야 사십 일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광야 생활 장면은 온 우주의 질서가 회복된 것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이 회복은 죄 사함으로 이루어진 회복입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땅에 들어갈 차례입니다. 그 장면이 바로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시는 장면입니다. 

    때가 찼다

    예수님께서는 때가 찼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때가 찼다는 것은 앞에서 이루어질 일이 이루어졌다는 뜻입니다. 마치 컵에 물을 따를 때 물이 아래에서부터 차오르듯이 먼저 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나야 나중에 일어날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역사의 진행 순서에 따라서 정확한 때에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미 임했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이 말은 하나님 나라가 이미 임했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님의 백성들과 묶이셔서 세례를 받으심으로 임한 나라입니다. 즉 자기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하시고 나서 임한 나라입니다. 이 일은 십자가로 성취될 것이지만 세례로 이미 그 의미가 성취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가 이미 임했다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하나님 나라는 우리 안에 있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매일성경 | 마가복음 1장 12-20절 |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신 일과 제자들을 부르신 일, 그리고 복음

    복음을 믿으라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믿으라"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가 예수님 안에서 이미 온 것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입니다. 바로 믿음입니다. 아직 천국의 극치가 도래하지 않았습니다. 천국의 극치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셨을 때 도래합니다. 그 때는 믿거나 믿지 않거나 눈으로 생생하게 보고 천국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때가 오기 전에는 믿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죄 사함과 그로 인해서 천국이 이미 왔다는 선포를 믿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믿는 자들만 그것이 성취된 것을 볼 수 있고 경험하고 누릴 수 있습니다. 복음은 믿어야 합니다. 

    나를 따라오라

    16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18   곧 그물을 버려 두고 따르니라
    19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그들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20   곧 부르시니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 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

     

    16절부터 20절까지는 예수님께서 제자를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 군대 장관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따라오라"라고 부르셨습니다(17절 상). 이 말은 "나의 뒤로 오라"라고 직역할 수 있습니다. 앞서 나가면서 싸우는 군대 장관이 군사에게 나의 뒤로 오라 라고 부르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17절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는 전통적으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서 구원시키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그런데 어부는 구원을 시키는 사람인 동시에 심판자입니다. 물고기에게 어부는 천적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낚는 어부는 물고기에게 어부가 천적인 것처럼 사람들을 잡아서 심판하는 심판자가 되게 하겠다는 뜻도 내포합니다. 이것이 구약 성경에서 어부의 이미지입니다(겔 29:2-5; 렘 16:14-18; 합 2:14-17 참조). 당시 유대인이라면 구약 성경을 잘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듣고 자기들이 사람들을 심판하는 사람이 될 것을 기대했을 것입니다. 실제로 제자들의 그런 기대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나아가실 때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납니다. 

    제자들의 반응

    제자들이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을 때 그들은 자기 생업을 울며 겨자 먹기로 버린 것이 아닙니다(18절). 세배대의 아들들인 야고보와 요한이 그 아버지 세베대와 품꾼들과 배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19-20절). 제자들은 예수님을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는 메시아로 보았습니다. 그 메시아를 따라 가면 물고기에게 어부가 심판자인 것처럼 자기들도 보좌에 앉아서 사람들을 심판하고 다스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생업이냐 심판자냐 이 두 가지 중에서 더 좋은 것을 선택해서 따른 것입니다. 이들의 기대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확증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마 19:2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과 사람을 낚는 어부라는 비유

    복음을 전하는 일이 바로 구원과 심판이 동시에 일어나게 하는 일입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서 구원하는 사람인 것은 복음을 전할 때 듣고 믿는 자는 구원을 얻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복음을 듣고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믿지 않는 자는 심판을 받습니다. 복음을 받지 않는 것 자체가 이미 심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낚는 어부는 구원자인 동시에 심판자입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라는 비유는 두 가지 의미를 다 내표합니다. 물고기는 물에서 살지만 사람은 물에서 살 수 없습니다. 물은 죽음을 상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을 물에서 건지는 것은 사람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첫 번째 의미입니다.

     

    물고기는 물에서 나오면 죽습니다. 자기 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이미 죽은 것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물에서 꺼내는 것을 오히려 죽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복음을 거부합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심판이 내려집니다. 이것이 두 번째 의미입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라는 비유 안에는 복음의 본질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 복음은 하나님께서 시작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심으로 이루시고 계십니다(1:1). 복음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글이 유익하셨다면 구독과 공감(❤️)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