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사도행전 14장 19-28절 | 제1차 전도여행을 마침

2024. 6. 1. 09:09성서유니온 매일성경/사도행전


사도행전 14:19-28

찬송가 336장 환난과 핍박 중에도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님을 전함

루스드라에서 바울과 바나바는 무리가 자기들에게 제사 지내는 것을 막았습니다. 사탄은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이 복음을 전하는 것을 막으려고 했습니다. 죽이려고 하다가 신으로 추앙하도록 하는 계략을 펼쳤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계략에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자기들을 신으로 받들려고 하는 중에도 거기에서부터 시작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복음 전파를 막으려고 하는 사탄을 멸하는 유일한 방법은 어떻게 해서든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입니다. 

돌에 맞아 죽었지만

19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하니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
20   제자들이 둘러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그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21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22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23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 하며 그들이 믿는 주께 그들을 위탁하고
24   비시디아 가운데로 지나서 밤빌리아에 이르러
25   말씀을 버가에서 전하고 앗달리아로 내려가서
26   거기서 배 타고 안디옥에 이르니 이 곳은 두 사도가 이룬 그 일을 위하여 전에 하나님의 은혜에 부탁하던 곳이라
27   그들이 이르러 교회를 모아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보고하고
28   제자들과 함께 오래 있으니라

 

유대인들은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왔습니다. 그들이 온 이유는 바울과 바나바를 죽이기 위함이었습니다(19절). 유대인들은 이고니온에서 그들을 돌로 쳐서 죽이려고 했었습니다(14:5). 사도들은 알고 도망쳐서 다른 곳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들을 기어코 죽이려고 따라왔습니다. 따라와서 바울을 돌로 쳤습니다. 바울은 돌에 맞아 숨이 끊어진 것처럼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바울이 다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을 시외로 끌어냈습니다. 

 

루스드라에서 돌에 맞은 사도 바울

이적이 확실함

20절에 보면 제자들이 바울을 둘러섰다고 합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제자들이 바울을 둘러 선 것은 그의 시체를 장사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때 바울이 다시 살아났다고 합니다. 어떤 학설에 의하면 이 때에 바울이 기절하였다가 회생한 것뿐이고 아주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은 아니라고 하는데 혹시 기절했다는 학설이 옳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이 기적이었다는 것은 확실하다고 합니다. 그가 돌에 맞아 죽은 상태에 이르렀었는데 치료 받은 일도 없이 그 자리에서 일어나서 전도사역을 계속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박윤선, 사도행전 주석 313). 

 

누가는 이 부분을 애매하게 기록합니다. 바울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는지 아닌지 모르게 쓰는 것입니다. 박윤선 목사님 말씀대로 바울은 죽었다가 소생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놀라운 기적을 베푸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이렇게 애매하게 기록한 것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구별하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소생이고 예수님은 부활입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이런 기적을 베푸신 것은 바울에게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은 자기들을 장사지내려고 둘러 선 제자들 앞에서 일어나서 다시 그 성에 들어갔습니다. 바울은 복음 전하는 일에 사자같이 담대하였습니다. 죽음을 개의치 않았습니다(20절). 

 

바울은 이튿날 더베로 가서(20절 하) 거기에서 복음을 그 성에 전했습니다. 죽을 위기를 수차례 넘겼지만 굴하지 않고 사명에 집중했습니다. 바울은 후에 디모데후서 3장 11절에서 이 때의 박해를 기록하면서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라고 기록합니다. 바울은 주님께서 자기를 건지시는 손길을 계속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바울은 자기를 죽이려고 한 도시들로 다시 갑니다. 그 도시들에는 바울과 바나바의 복음 전도로 믿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을 다시 방문해서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고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고 권했습니다(22절). 그러면서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

 

믿음에 거하라에서 거한다는 것은 굳게 붙잡고 참아 나아감을 의미한다. 누구든지 좋은 일을 시작할 수는 있으나 그것을 끝까지 계속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은혜로만 그것이 용이하게 이루어진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열매를 구하시는 것은 그의 은혜로 결실할 수 있는 것에 국한하여 그리하신다. 우리가 노력해야 천국에 들어간다는 말씀(마 11:12)에 있어서 그 노력이란 것도 주님의 은혜의 뒷받침을 받아서, 혹은 주님의 은혜 속에서 되어지는 우리의 노력을 가리킨다. 은혜로 성립되는 노력은 실상 안식과 같은 것이다(마 11:28-30 참조)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이 말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 

 

이 말씀의 뜻은 천국에 들어가게 하는 공로로 환난을 겪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천국에 들어가게 하는 공로와 의는 언제든지 에수 그리스도 뿐이시다. 기독신자가 고난을 받는 것은 그리스도와 알체된 증거이다(요 15:19-20). 그리스도께서 땅 위에 계시는 동안은 고난의 사람이었으므로 그와 연합된 신자가 고난에 동참하게 될 것은 당연하다. 
바울이 여기서 강조한 것은 신자가 환난을 당하면서 천국에 들어가게 됨이 하나님이 정하신 필연성에 속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본문은 다음과 같이 개역되어야 한다. 곧 "많은 환난들을 경유하여 하나님 나라에 반드시 들어간다(Διὰ πολλῶν θλίψεων δεῖ ἡμᾶς εἰσελθεῖν εἰς τὴν βασιλείαν τοῦ Θεοῦ)"라고. 여기 "반드시"란 말(δεῖ)은 "들어간다(εἰσελθεῖν)"는 말과 관련되어 들어감의 신적 필연성을 말해준다. 곧 그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도록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신다는 것이다(롬 8:17; 살후 1:4; 딤후 2:12 참조). 

 

환난을 겪는 것이 필연이 아니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이 필연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환난이 필연인 것처럼 번역되었습니다. 그러나 환난은 경유지입니다.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은 환난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반드시 들어간다고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그렇게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노력이 아니라 은혜가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노력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한다면 "반드시"라는 말을 절대 붙일 수 없습니다. 노력이 아니라 은혜이기에 "반드시"라는 말이 붙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믿는 주께 그들을 위탁하고

바울은 지나오면서 전도한 도시들, 더베와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비시디아)으로 다시 갑니다. 거기에 가서 그들을 위의 말로 권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붙으실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23절로 확실하게 드러납니다. "그들이 믿는 주께 그들을 위탁하고" 그러므로 바울이 이들에게 권한 말은 주님께서 너희들과 함께 하실 것이니 주님을 굳게 믿고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어떤 행위를 해서 공로를 쌓으라는 뜻이 아닙니다. 

 

바울이 교회를 주님께 위탁한 방법은 그곳에 장로들을 택하여 세운 것입니다(23절). 그러므로 장로들은 교회를 주님께 굳게 붙들어 매는 사람들입니다. 바울은 그 장로들의 장래를 위하여 금식기도하고 그들을 주님께 위탁했습니다. 이제 주님께서 장로들을 사용하셔서 그 교회를 지키실 것입니다. 바울은 믿음으로 들어가고 믿음으로 나갔습니다. 떠나면서 그는 믿음으로 교회를 주님께 위탁했습니다. 

 

바울은 온 길 그대로 돌아가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24-25절). 그렇게 하고 안디옥으로 돌아갔습니다. 이 안디옥은 수리아 안디옥입니다(26절). 거기에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마음의 문을 여신 것을 보고했습니다(27절). 선교보고를 한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 제자들과 함께 지냈습니다. 이것으로 제1차 전도여행을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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