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시편 104편 1-18절 | 자연 만물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위대하심

2024. 4. 29. 08:47성서유니온 매일성경/시편

목차


    시편 104:1-18

    찬송가 79장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특별한 은혜와 일반 은혜

    시편 103편이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찬송한다면 시편 104편은 자연을 보면서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두 시는 모두 송축하라는 명령으로 시작하고 마칩니다.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은혜도 베푸시고 일반은혜도 베푸십니다. 죄를 용서해 주시고 구원해 주시는 특별한 은혜도 베풀어 주시고 자연을 향유하면서 삶을 영위하도록 하는 일반 은혜도 베푸시는 것입니다. 두 은혜 모두 한 분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두 가지 은혜 모두에 대해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두 가지 은혜 중 가벼이 여길 것은 없습니다. 

    내 영혼아

    1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는 심히 위대하시며 존귀와 권위로 옷 입으셨나이다

     

    시인은 자기 영혼에게 여호와를 송축하라고 명령합니다. 사람은 자기 영혼에게 스스로 명령할 수 있습니다. 자기가 자기를 바라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성취를 위해서 스스로에게 명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명령은 여호와를 송축하라는 명령입니다. 

    나의 하나님

    시인은 여호와를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을 자기의 하나님으로 삼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시인은 하나님과 친밀합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그에게 다가오셨기 때문입니다. 시편 103편에 그 내용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시인의 모든 죄악을 사하시고 그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 씌우셨습니다(103:3-4). 그렇기 때문에 시인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자녀 삼아주셨기 때문입니다. 

    위대하신 하나님

    그런데 친밀하신 하나님께서는 심히 위대하십니다. 존귀와 권위로 옷 입으신 분이십니다. 가장 높으신 분이십니다. 가장 높으신 분과 내가 특별한 관계에 있습니다. 이것은 특권입니다. 이 특권을 깨달은 사람은 자꾸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빛과 하늘

    2   주께서 옷을 입음 같이 빛을 입으시며 하늘을 휘장 같이 치시며

     

    하나님께서는 빛을 옷 같이 입으시고 하늘을 휘장 같이 치십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옷자락이 성전에 가득한 장면을 보았습니다(사 6:1). 빛이 비치는 곳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옷자락이 덮고 있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와 어둠

    십자가에서 온 땅에 어둠이 임했습니다. 정오부터 오후 세 시까지 온 땅에 빛이 없었습니다(막 15:33). 그 때는 해의 기운이 가장 셀 때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땅에 은총을 거두시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 현장은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죽임 당하는 현장입니다. 사람의 죄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죄에 대해서 모든 사람을 심판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하지만 반전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 집중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숨지시자 세상은 다시 밝아졌습니다. 우리가 빛을 보고 즐거워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죄를 속량하셨기 때문입니다.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하늘과 휘장

    하나님께서는 하늘을 휘장 같이 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시는 지성소를 휘장이 가리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나아가려면 이 휘장을 지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 휘장을 지나갈 수 있는 사람은 피를 통과한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속죄를 받은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올라오셨을 때 하늘이 갈라졌습니다(막 1:10) 또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숨지셨을 때 성소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져서 둘이 되었습니다(막 15:38). 우리는 하늘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심히 높으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언제든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것이 얼마나 큰 특권인지 알아야 합니다. 

    물에 누각을

    3   물에 자기 누각의 들보를 얹으시며 구름으로 자기 수레를 삼으시고 바람 날개로 다니시며
    4   바람을 자기 사신으로 삼으시고 불꽃으로 자기 사역자를 삼으시며

     

    하나님께서는 물에 자기 누각의 들보를 얹으셨습니다. 들보는 윗층의 무게를 지탱하는 구조물입니다. 누각은 어떤 목적을 위한 공간을 뜻합니다. 회의실 같은 곳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 이미지는 하나님께서 구름을 타시고 물 위에 있는 공간에서 회의를 하시는 이미지입니다. 회의의 결과 바람과 불꽃이 하나님의 뜻을 수행합니다. 4절에 나오는 사신은 천사를 가리킵니다. 사역자는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하늘과 구름과 바람과 불꽃

    맑은 하늘에 구름이 빨리 떠가는 장면을 볼 때가 있습니다. 시인은 그런 장면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무엇인가 일하고 계시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 깨달음을 시적으로 표현합니다. 물이 이리저리 움직이고 구름과 바람을 따라서 빨리 지나가고 바람이 불고 불꽃이 일어나는 모든 일 중에서 우연히 되는 것은 없습니다. 다 하나님께서 주관하십니다. 

    땅을 흔들리지 않게

    5   땅에 기초를 놓으사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게 하셨나이다

     

    물과 구름과 바람과 불꽃은 유동적입니다. 잘 흔들리고 빨리 움직입니다. 하지만 땅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땅을 사람이 살도록 주셨습니다. 땅을 흔들리지 않게 하시고 사람으로 살도록 하신 것도 하나님의 크신 은혜입니다. 

    바다와 땅

    6   옷으로 덮음 같이 주께서 땅을 깊은 바다로 덮으시매 물이 산들 위로 솟아올랐으나
    7   주께서 꾸짖으시니 물은 도망하며 주의 우렛소리로 말미암아 빨리 가며
    8   주께서 그들을 위하여 정하여 주신 곳으로 흘러갔고 1)산은 오르고 골짜기는 내려갔나이다
    9   주께서 물의 경계를 정하여 넘치지 못하게 하시며 다시 돌아와 땅을 덮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나님께서 땅을 사람이 사는 곳으로 주실 때에 깊은 바다를 물리치셨습니다(6-7절). 깊은 바다는 사람에게 죽음을 상징합니다. 바다가 덮고 있으면 지상 생물은 그 어떤 것도 살 수 없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7절에 주께서 꾸짖으시니 물은 도망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바다를 꾸짖으시자 바다는 잠잠해졌습니다(막 4:39). 예수님은 하나님이셨습니다. 바다가 예수님께서 타신 배 안에 있었던 사람들의 생명을 심히 위협했습니다(막 4:38). 그 때 예수님께서는 일어나셔서 바다를 꾸짖으셨습니다. 그러자 바다가 잠잠해졌습니다. 바다가 생명을 위협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죽음도 잠잠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죽음을 제어하심

    하나님께서는 물의 경계를 정하셔서 넘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물이 다시 돌아와서 땅을 덮지 못하게 하셨습니다(9절). 사람이 죽음을 면하고 사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터전이 보호되는 것도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지키시기 때문에 사람이 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음을 완벽하게 제어하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음을 죽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믿음으로 영생을 바라봅니다. 

    육지의 물

    10   여호와께서 샘을 골짜기에서 솟아나게 하시고 산 사이에 흐르게 하사
    11   각종 들짐승에게 마시게 하시니 들나귀들도 해갈하며
    12   공중의 새들도 그 가에서 깃들이며 나뭇가지 사이에서 지저귀는도다

     

    바다는 일렁이는 죽음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똑같은 물이지만 땅에서 솟아나는 샘은 생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풍성한 물로 모든 짐승을 기르십니다. 그것들의 생명을 유지하게 하십니다. 물에 들어가면 죽지만 물을 마셔야만 삽니다. 이것 또한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입니다. 

    산에 물을 부어 주시니

    13   그가 그의 누각에서부터 산에 물을 부어 주시니 주께서 하시는 일의 결실이 땅을 만족시켜 주는도다

    14   그가 가축을 위한 풀과 사람을 위한 채소를 자라게 하시며 땅에서 먹을 것이 나게 하셔서

    15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와 사람의 얼굴을 윤택하게 하는 기름과 사람의 마음을 힘있게 하는 양식을 주셨도다

     

    물은 식물에게 흘러가서 열매가 됩니다. 각종 먹을 것이 됩니다. 이것 또한 하나님의 지혜요 은혜입니다. 물은 풀과 채소를 자라게 합니다. 땅에서 먹을 것이 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땅에 물이 흐르게 하심으로(10절) 포도주와 기름과 양식을 주십니다(15절). 그것으로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누각에서부터 산에 물을 부어주시기 때문입니다(13절). 비를 내려주시기 때문입니다. 3절에 나오는 물에 있는 누각이 여기에 다시 등장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회의를 거쳐서 즉 하나님의 지혜로 적절한 때에 적절한 장소에 비를 내려 주십니다. 산에 비를 내려 주시면 그것이 시내가 되어 아래로 흐릅니다. 땅에서 그것은 강이 됩니다. 그렇게 해서 작물이 자라게 하십니다. 우리가 먹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때에 따라서 산에 물을 부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생명수 강

    요한계시록 21장 1절에 보면 바다가 다시 있지 않았다고 나옵니다. 이어서 22장 1절에는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 강이 흐른다고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극치에 이르면 죽음이 없고 생명만 가득하게 됩니다. 우리는 지금 일어나는 여러 자연 현상으로 천국의 극치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나무, 백향목

    16   여호와의 나무에는 물이 흡족함이여 곧 그가 심으신 레바논 백향목들이로다
    17   새들이 그 속에 깃들임이여 학은 잣나무로 집을 삼는도다
    18   높은 산들은 산양을 위함이여 바위는 너구리의 피난처로다

     

    16절에는 레바논의 백향목을 여호와의 나무라고 합니다. 백향목은 레위기 14장에서 나병환자가 정결하게 되는 날 수행해야 하는 규례에 사용됩니다(레 14:4, 6). 민수기 19장에서는 부정을 씻는 물(민 19:9)을 만들 때 붉은 암송아지와 함께 사용됩니다(민 19:6). 또한 민수기 24장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하기도 합니다(민 24:6). 사무엘하에 보면 백향목은 다윗의 왕궁을 짓는데 사용되었습니다(삼하 7:2). 또한 열왕기상 5-7장에 보면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는데 사용됩니다. 시편 80편에 보면 여호와의 백성을 포도나무에 비유하면서 그 가지를 백향목 가지와 같다고 합니다(시 80:10). 시편 92편에서는 의인을 백향목에 비유하기도 합니다(시 92:12).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을 선포할 때 비유로 백향목이 꺽일 것이라고 예언합니다(렘 22:7, 15, 23; 겔 17:3, 22, 23).

     

    레바논의 백향목들은 하나님의 백성들과 긴밀하게 연관됩니다. 하나님 나라와도 연관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여호와의 나무라고 불립니다. 백향목은 건축과 연결됩니다. 집을 생각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나무들을 사용하셔서 각종 새들의 거처가 되게 하십니다(17절 상). 또한 잣나무로 학이 집을 짓도록 하십니다(17절 하). 높은 산과 바위는 산양과 너구리의 집이 되게 하십니다. 

     

    17 새들이 그 속에 깃들임이여 학은 잣나무로 집을 삼는도다
18 높은 산들은 산양을 위함이여 바위는 너구리의 피난처로다

    안락한 집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짐승들에게도 안락한 집을 제공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마 8:20)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 안락함을 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땅에서 사명을 위해서 십자가로 걸어가셨습니다. 죽임 당하시고 부활하셔서 하나님께로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 거처를 발견하지 못하셨지만 하늘에 올라가셔서는 우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셨습니다(요 14:2). 

    거주의 안정

    모든 사람은 거주의 안정을 바랍니다. 안락한 거처를 마련해서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이 땅은 영원히 거할 곳이 아닙니다. 우리가 영원히 거할 곳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마련하신 하늘 거처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누리는 안락함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 덕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일에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송축해야 합니다(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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