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때 지루해 하거나 졸면 안 되는 이유 두 가지

2023. 1. 13. 06:47Think Again


 

본문: 민수기 7:12-89

찬송 218장, 네 맘과 정성을 다하여서


여러분이 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혹시 지루하지는 않나요? 매번 똑같은 순서에 똑같은 목사님의 말씀, 어딘지 모르게 지루하고 졸립니다. 저도 많이 졸아보아서 압니다. 그런데 만약에 교회가 다 같이 어디로 가고 있으면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면 어떨까요? 말씀 시간에는 가는 방향에 대해서 안내를 하고 주의 사항을 당부하고 있다면 졸 수 있을까요? 오늘 말씀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예배

똑같은 내용을 열 두 번 기록한 이유

어제 말씀에는 각 지파의 지휘관들이 레위인들이 쓸 것을 드렸다는 내용이 나왔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각 지파 지휘관 누가 어떤 예물을 무엇을 위해 드렸는가가 나옵니다. 그런데 그것을 똑같은 말로 계속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같은 예물을 같은 용도로 드렸으면 누가, 누가, 누가, 이렇게 열두 명의 이름을 쭉 기록해 놓고 이러이러한 예물을 이러이러한 용도로 드렸다, 이렇게 쓰면 될 것을 같은 말을 열두 번을 쓰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기록했을까요? 열 두 지휘관의 이름을 순서대로 쓰고 그들이 드린 예물을 빠짐없이 기록한 것은 하나님 백성 각각이 드리는 각각의 예물을 하나님께서 각각 다 기쁘게 받으셨다는 뜻입니다. 이 기록을 읽다보면 마치 내가 이스라엘 족속 한 사람, 한 사람이 예물을 드리는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12일에 걸쳐서 진행되는 행사에 참여해서 이스라엘 지휘관들이 무슨 예물을 어떤 용도로 드리고 있는가를 보고 있는 느낌입니다.

만약에 내가 이스라엘 지파 중 하나에 속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봅시다. 마지막 날 예물 드린 지파가 납달리 지파이니 납달리 지파에 속한 사람이라고 한다면 마지막 날이라고 소홀하게 생각할 수 있을까요? 납달리 지파의 지휘관 아히라가 헌물을 드릴 때 그 헌물이 나를 대표해서 드리는 헌물이니 얼마나 특별하겠습니까? 

그 특별한 헌물을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받으셨다는 것을 드러내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바로 하나 하나 개별적으로 똑같이 기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백성이 드리는 신앙과 헌신을 귀하게 여기신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교회이면서 동시에 나

우리는 이것이 예수님에게서 실현된 것을 압니다.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이시면서 동시에 "나"의 구주이십니다. 나는 교회 전체의 부분이면서 동시에 없어서는 안 될 예수님의 몸의 지체입니다. 예수님은 다른 사람의 구주가 아니라 "나의 구주"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이 교회를 위한 것이면서도 동시에 "나"를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고 그가 하신 일이 무슨 일인지 아는 것도 중요합니다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영단번의 제사를 드리신 것이 거룩한 공 교회를 위한 것이면서도 동시에 개별자인 "나"를 위한 것입니다. 이것이 나에게 큰 의미로 다가오고 깨달아지고 느껴져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달리신 그 자리가 내가 십자가에 달린 자리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이 나의 부활의 시작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각 지파에 속해서 자기 지휘관이 하나님께 헌물을 드릴 때 그것에 생생하게 참여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교회에 속해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 그 예배가 교회의 예배이면서 동시에 나를 위한 예배임을 알고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서 행하신 일을 깊이 깨닫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예배는 진행이다

한 가지 더 살펴볼 것은 각 지파의 지휘관들이 예물을 드릴 때 어떤 순서로 드렸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순서는 광야에서 행진할 때의 순서입니다. 광야에서 행진할 때 맨 앞에는 언약궤를 맨 레위지파가 맨 앞에 나아갑니다. 그다음이 유다, 잇사갈, 스불론 지파가 다음에 행진합니다. 성막의 물품이 그다음에 행진하고 이어서 르우벤, 시므온, 갓 지파가 행진합니다. 또다시 성막의 기구가 그다음에 행진하고 뒤를 이어서 에브라임, 므낫세, 베냐민 지파가 행진하고 마지막으로 단, 아셀, 납달리 지파가 행진합니다. 오늘 각 지파가 헌물을 드리는 순서와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방향

이것을 잘 생각해 보시면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 그 예배는 우리를 어디로 이끄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드리는 예배는 진행방향이 있는 예배입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드리는 헌물과 각 지파의 제사순서가 진행방향이었던 것처럼 우리의 이 땅 예배도 그냥 여기가 좋사오니 하면서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방향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방향은 어디일까요? 바로 우리 모두 예수님처럼 부활하여 영화롭게 되는 방향입니다. 주일마다 예배를 드리면서 점점 더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서 끝에 가서는 부활생명으로 영화롭게 되는 것입니다. 누가 먼저냐, 누가 크냐가 중요하지 않고 어느 방향으로 향하여 가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오늘도 부활을 바라보시면서 더 성화를 이루시는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